중동戰, 스태그플레이션 부를 수도… ‘민간 주도성’ 살려내야 극복 가능[Deep Read]
확전으로 유가 급상승 땐 경제 충격… 70년대엔 시장 주도의 ‘공급 중시’ 정책으로 난국 타개
정부, 규제 완화·개방화로 기업 생산성 높이고 산업 패러다임 전환해 중동발 위기 대비해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으로 국제유가가 출렁이고 있다. 중동 분쟁에 따른 불안은 소요 원유의 3분의 2가량을 이 지역에서 수입하는 한국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50년 전 4차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불러온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게 한 힘은 케인스식 국가 주도 총수요 정책이 아니라 슘페터식 시장에 의한 공급 주도 정책이었다.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 성장을 추구하려면 패러다임 대전환으로 시장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효율성 증가를 꾀해야 한다.
◇중동전쟁과 유가
유가 상승으로 세계 경제체제가 지각 변동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사례로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석유 파동을 꼽을 수 있다. 1973년 10월 아랍연맹군의 이스라엘 침공에 의한 제4차 중동전쟁으로 유가는 배럴당 3달러 수준에서 12달러까지 상승했다. 이어 1979년 12월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에 이은 이란의 전면적인 석유 수출 중단 조치와 1980년 9월 이란-이라크 전쟁, 1981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무기화 선언 등으로 유가는 39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유의해야 하는 건 단순히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유가 상승이 생산 원가를 상승시켜 비용인상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더 큰 우려가 있다.
실제로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유가 상승은 경제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1979∼1981년 사이 기준금리를 11% 수준에서 21%로 급격히 인상하는 물가 안정 정책을 시행했다. 그 시절 미국은 1974년(-0.54%)과 1975년(-0.21%)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11.05%(1974년)에 이르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도 1980년에 -1.65% 경제성장률을, 1974년과 1975년에 각각 24.30%와 25.25%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10배 이상 증가한 유가와 고물가, 그리고 높은 이자율에 의한 외채 상환 부담 증가는 세계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주요 원인이 됐다. 이는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외채 의존이 높았던 남미 국가들 또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유가 상승은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됐고, ‘외채망국론’이라는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도전받는 한국 경제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게 한 정책은 케인스가 제안한 총수요 정책이 아니라 공급 주도 경제정책이었다. 즉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시장경쟁을 강화하는 정책이 주효했다. 규제 완화와 시장경쟁을 강화하는 개방화·자유화, 민간 주도의 사유화, 그리고 적정한 정부 지출을 통한 안정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영국의 대처리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독일의 헬무트 콜 체제, 뉴질랜드의 로저노믹스 등이 이에 속한다.
한국도 경제 안정화 및 산업 합리화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플라자 협정에 따라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경기 회복이 빨라지는 행운도 따랐다. 재정 투입을 중시하는 케인스 정책에서 벗어나 정부 지출을 덜 하면서 경제 회복을 시도하는 소위 ‘공급 중시 경제학’이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사로 나서게 됐다. 케인스의 명성에 가렸던 슘페터의 혁신론과 공급 확대 정책이 각광 받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최근의 국제 경제나 한국 경제는 1970년대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과 곡물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글로벌 복합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 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에너지 위기에 대한 강한 우려를 일으킨다.
특히 한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과 낮은 경제성장률로 불안한 상황이다. 여기에 가계·기업·국가 부채 증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위기 등 지속가능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과 디지털·에너지 전환 등 미래 상황에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
◇패러다임 전환
한국에 가장 절실한 것은 정부만 쳐다보는 것에서 벗어나 민간과 시장을 바라보게 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산업정책을 사회복지정책 시각에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정책금융, 유류세 인하와 유가보조금 정책, ‘무상 시리즈’로 대변되는 보편적 복지, 로톡·우버·타다 불법화 등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모두 소득 분배 개선이라는 사회복지정책의 기본 목적에 어긋나는 정책들이고,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상정책은 무상급식을 받아 오던 기존 저소득층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새로이 무상 혜택을 보는 중상위 계층에만 도움이 된다. 유류세 인하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계층에 더 많은 지원이 가게 한다.
더욱 심각한 건 싼 전기요금이다. 이 정책은 물가에 대한 ‘착시 현상’을 불러 국내 생산자나 소비자로 하여금 에너지 위기를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h당 106.8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96.1달러의 54%에 불과했다. OECD 34개국 중 32위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저렴하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싼 전기료가 화석연료 보조금에 해당한다면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수출 철강에 상계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됐던 싼 전기요금이 경제 성장의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산업정책 패러다임을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게 말로만 떠들던 사회적 약자 지원이나 소득 분배 개선을 이루는 실질적인 정책 전환이다. 유류세는 인하하는 것보다 시장가격에 맡기고 이를 통한 정부 수입은 기업과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과거의 교훈
중동 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몰고 올지도 모를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을 ‘시장 주도’가 아닌 ‘시장 지원’으로 국한해야 한다. 그게 과거 중동전쟁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을 시장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시장 효율성 증가로 극복한 사례들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다. 정부 주도의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극히 단기적 정책 수단이며, 우리 미래세대에 추가적 부담을 안겨주는 패착이 될 수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국제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스태그플레이션’, 즉 stagflation은 경기침체(stagnation)와 물가상승(inflation)의 합성어.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은 전 세계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간 계기가 됨.
‘공급 중시 경제학’은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를 성공시킨 정책으로 조세 감면, 규제 완화 등 정책으로 총공급을 증가시키는 것. 슘페터의 혁신성장론도 공급 확대를 위한 정책으로 볼 수 있어.
■ 세줄 요약
중동전쟁과 유가 : 이스라엘-하마스戰이 중동전쟁으로 확전하면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인상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일으키는 스태그플레이션 초래할 우려. 1970년대 중동전쟁에 의한 세계적 경기침체가 사례.
도전받는 한국 경제 : 중동지역 분쟁은 소요 원유의 3분의 2가량을 이 지역에서 수입하는 한국에 직접적 충격을 줄 수 있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게 한 정책은 총수요 정책이 아닌 공급 주도 정책이었음.
패러다임 전환 : 중동 분쟁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가 역할을 ‘시장 주도’가 아닌 ‘시장 지원’으로 국한해야. 한국 경제는 시장 경쟁력 강화와 민간 생산성·효율성을 높이는 정책 패러다임 대전환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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