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불탄 파피루스 해독…“보라색” 읽어낸 AI
서기 79년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폼페이와 함께 사라져 버린 나폴리만의 고대 로마 도시 헤르쿨레니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비밀이 인공지능 덕분에 2천년 만에 벗겨지기 시작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의 식물로 줄기를 얇게 갈라 편 뒤 건조시킨 다음 용도에 따라 종횡으로 이어붙여 종이로 사용했다.
1752년 땅속 20m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총 800개나 돼 당시 학자들을 흥분시켰다. 발굴 장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의 별장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피소는 당시 에피쿠로스 학파의 후원자였다.
학자들은 그러나 이 두루마리 가운데 200여개는 손도 대지 못했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불에 타거나 검게 그을려버린 두루마리를 펼치려는 순간 두루마리가 부스러져버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엑스레이를 이용해 두루마리에 손을 대지 않고 글씨를 판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종이가 겹겹이 말려 있어 판독에 애를 먹고 있다.
인공지능이 이런 고민을 덜어주는 해결사로 나섰다. 프랑스 학사원이 주최한 두루마리 판독 경진대회 ‘베수비오 챌린지’(Vesuvius challenge) 참가자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글씨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1500여명 참여…개발 코드 공유하며 기술 개선
그 첫 주인공은 미국 네브라스카-링컨대의 컴퓨터과학 전공 학생 류크 패리터(21)다. 패리터는 두루마리 사진에서 잉크를 식별해내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해 지난 8월 ‘보라색’(πορύραc, 알파벳으로는 porphyras)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문자를 읽어냈다. 패리터는 상금으로 4만달러를 받았다.
이 챌린지 참가자들에게는 켄터키대 연구진이 촬영한 수천장의 엑스선 사진과 관련 소프트웨어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제공된다. 이 대학의 브렌트 실스 교수(컴퓨터공학)가 지난 20여년 동안 두루마리를 읽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확보하고 개발한 것이다.
패리터가 해독에 성공하고 얼마 뒤 이번엔 베를린자유대의 다른 데이터과학 전공 학생 유세프 나데르가 다른 인공지능 기술로 같은 단어를 좀 더 선명하게 읽어냈다. 나데르에겐 1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졌다.
지난 3월 시작된 이 대회는 12월31일까지 계속되는데 현재 15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깃허브를 통해 각자의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판독 기술을 개선시켜 나가는 게 특징이다. 연말까지 두루마리에서 4개 이상의 구절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에겐 대상 상금 70만달러가 주어진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마이클 맥오스커 박사후연구원은 ‘뉴사이언티스트’에 “지금까지 펼쳐서 읽은 파피루스는 모두 시작 부분이 누락돼 있는 데다 상태도 좋지 않다”며 “인공지능을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복원 성공 땐 르네상스시대 원고 재발견에 비견
이번 대회를 기획한 실스 교수는 “왕족이나 부, 조롱을 연상시키는 이 단어(보라색)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고대 책자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첫번째 다이빙”라며 “이 특별한 두루마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곧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발굴된 두루마리의 대부분은 별장 주인인 피소가 고용한 에피쿠로스 철학자 필로데무스의 개인 서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단 하나의 방에서 나온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학자들은 피소가 별장에 주요 라틴어 및 그리스어 작품이 포함된 종합 서재를 갖고 있었을 것이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방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파피루스 전문가인 영국 브리스톨대의 로버트 파울러 명예교수는 “피소의 서재를 복원한다면 고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뀔 것”이라며 “그 영향은 르네상스시대 작품의 재발견만큼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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