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 여론 조성됐는데 의대 정원 확대 멈칫한 정부 왜?

김창훈 2023. 10.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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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는 확정적이지만 정부는 공식 발표를 늦추며 여론 추이를 살피고 있다.

이즈음 언론에 익명의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보도들이 나오면서 '1,000명 이상 증원' '정부 임기 내 3,000명까지 증원' 등 미확인 관측이 퍼졌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7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추진했지만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진료 거부 등으로 거세게 반발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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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명확해도 매끄럽지 못한 과정
벌써 지역 유치전 가열, 입시업계 들썩
의사들 반발까지 사회적 혼란 감안한 듯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전라남도 의과대학 유치 촉구 집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8년 만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는 확정적이지만 정부는 공식 발표를 늦추며 여론 추이를 살피고 있다. 국민 60% 이상이 동의한다는 각종 여론 조사에 이례적으로 야권까지 동의하는 정책인데도 속도 조절에 들어간 이유로는 일파만파로 커진 사회적 혼란이 지목된다. 방향은 맞아도 매끄럽지 못한 정책 결정 과정이 자칫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500→1000명?...정부 자초한 일방통행 논란

주요국 의사 및 의학계열 졸업자 수 비교. 그래픽=박구원 기자

1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올해 의대 정원을 늘려 내년도 입시부터 반영하는 것은 당국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사안이었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이 반복되자 복지부는 올해 1월 주요 업무계획으로 대통령에게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보고했고 같은 달 말 대한의사협회와 이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렸다. 8월에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논의도 시작했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복지부는 당초 500명 수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놓고 여당과 논의를 거쳤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500명 정도면 의사들이 반발하지 않고 증원할 수 있는 인원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대폭 증원설이 돌기 시작한 건 이달 들어서다. 의대 정원을 포함해 당초 복지부 차원에서 19일 발표 예정이었던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 전략'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대통령실 주관으로 급변경됐다. 이즈음 언론에 익명의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보도들이 나오면서 '1,000명 이상 증원' '정부 임기 내 3,000명까지 증원' 등 미확인 관측이 퍼졌다.

이런 상황에 대한의사협회는 "증원 인원에 전혀 협의가 없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언론플레이 혹은 여론 간 보기용 애드벌룬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뚜껑 열기도 전 사회적 혼란만 가중

지난 17일 정부의 일방통행식 의대 정원 확대 시 총파업을 선언한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뉴시스

전날 긴급회의를 열어 일방적 추진 시 초강경 대응을 선포한 의협은 특히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복지부와 의협은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 '9·4 의정합의'를 맺었는데, 합의 내용 중에는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을 강행하지 않는다'가 포함됐다. 의협 관계자는 "무작정 반대가 아닌데 국민적 중대사를 이런 식으로 결정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사들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7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추진했지만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진료 거부 등으로 거세게 반발해 무산됐다. 당시 응급환자들이 사망하기도 했는데,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혼란을 부른 정부 책임론이 커질 수 있다.

의대 증원 규모가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파격적 확대를 기대한 학원가는 벌써부터 요동치고 있다. 안 그래도 '의대 광풍'인데 반수·재수생 증가와 이공계 이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의대 러시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탄한다.

전남에서는 의대 신설을 압박하고 충북에서는 최소 158명 이상 최우선 배정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과열된 지역 유치전도 정부에 부담이다. 설사 증원 규모와 지역별 인원 배정을 결정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는다고 해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둬 지역 간 갈등은 예고된 상태다.

정부는 1주일 정도 의대 정원 발표를 미루고 뒤늦게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를 통해 충분히 공감대를 얻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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