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CEO 전원소집한 최태원 "빠르게 변화 안하면 생존없다"
그룹 차원 '솔루션 패키지' 주문
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이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와 미중 반도체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대격변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하 주요 글로벌 경제블록 별 조직 구축과 그룹 차원의 솔루션 패키지 개발 등을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에게 주문했다.
SK그룹은 19일 최 회장과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경영전략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본격 실행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CEO 세미나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의장 등 주요 경영진 30여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폐막 연설에서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서든데스(돌연사)'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SK그룹 측은 최 회장이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언급한 '서든데스'를 다시 강조한 이유에 대해 "그룹이 맞닥뜨린 경영환경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최 회장은 이어 미·중국 간 주도권 경쟁 심화 등 지정학적 이슈,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생성 가속화, 양적완화 기조 변화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 증대, 개인의 경력관리를 중시하는 문화 확산 등을 한국 경제와 기업이 직면한 주요 환경 변화로 꼽았다. 그는 이 같은 경영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새로운 글로벌 전략 방향으로 글로벌 전략과 통합·연계된 사회적가치(SV) 전략 수립과 실행, 미·중 등 경제 블록 별 글로벌 조직화, 에너지·AI·환경 관점의 솔루션 패키지 등을 제안했다. 또 CEO들에게 사업 확장과 성장의 기반인 투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자 완결성 확보를 강한 어조로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투자 결정 때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고,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고려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CEO들은 맡은 회사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솔루션 패키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더불어 거버넌스 혁신까지 여러 도전적 과제들을 실행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번 행사에서 CEO들은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그룹 통합조직 같은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해 유기적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면 경쟁력과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 2010년 중국에 설립한 SK차이나와 같은 그룹 통합법인을 다른 거점 지역에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를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각 구성원들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유연근무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회사와 조직 별 최적화된 실행방안 등을 모색했다.
이와 관련,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매력적인 회사가 되지 않으면 더 많은 직업 선택권을 가진 미래 세대에게 외면받을 것"이라며 "최고의 글로벌 인재들이 올 수 있도록 그 나라의 문화와 경영방식에 익숙한 현지 조직에 과감히 권한을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지금은 신호와 소음이 혼재된 변곡점"이라며 "신호를 발견하는 리더의 지혜와 방해를 무릅쓰고 갈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현재 우리 그룹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글로벌 문제는 주요 국가들의 패권경쟁"이라며 "미국의 성공 방정식을 참고해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성공적인 글로벌 사업을 만들어가자"고 밝혔다.
한편 SK그룹이 CEO세미나를 해외에서 연 것은 지난 2009년 중국 베이징 이후 14년 만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의 핵심 의제가 '글로벌 경영'인데다, 세미나를 전후해 파리 외에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활동이 예정된 CEO들이 많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의 장소를 파리로 정했다"고 말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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