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하고 착취당한 살바도르 달리의 사랑 이야기···‘달리랜드’[리뷰]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만큼이나 기이한 행동으로도 유명했다.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개미핥기에 목줄을 채워 거리를 산책시키는 달리의 흑백사진을 볼 수 있다. 달리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고, 일찌감치 축적한 재산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며 작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을 것 같은 달리에게 마음대로 안 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영원한 뮤즈이자 아내인 갈라 달리였다.
18일 개봉한 <달리랜드>는 이미 예술가로서 큰 성취를 거둔 달리의 말년을 그린 영화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달리 개인보다는 달리와 갈라 간의 관계다. 달리의 작품세계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가깝다.
달리와 갈라의 관계는 착취적이다. 달리는 모든 것을 갈라에게 의존한다. 예술적 영감을 갈라로부터 얻고, 일상생활도 갈라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갈라가 그림은 그리지 않고 파티만 일삼는 달리를 쥐 잡듯이 다그치며 갤러리에 납품할 작품을 만들어내라고 화를 낼 때조차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로맨스일까? 달리는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나자 “이 손가락은 썩어버릴 거야”라며 부엌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런 달리를 아이처럼 달래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갈라뿐이다. 작품 거래 같은 행정적인 일도 당연히 갈라의 몫이다. 달리는 갈라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갈라에게 ‘끝없는 돌봄’을 요구하며 갈라를 옥죈다.
갈라도 달리를 착취한다. 영화 속 갈라는 달리에게 “당신이 유명해지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늙어버렸다”고 소리친다. 실제 높은 지성과 야망을 갖고 있던 갈라는 당대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에 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달리보다 열 살이 많은 그는 젊음과 외모에 집착한다. 달리 앞에서 젊은 연인과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하고, 달리의 작품을 연인에게 줘버리기도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말년까지 함께한다. 갈라가 먼저 숨을 거두자 달리는 급격히 쇠약해졌다고 한다. <달리랜드>가 흥미로운 점은 영화 내내 달리의 그림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을 그리는 달리의 손, 얼굴 표정, 뒷모습은 나오지만 완성된 그림을 직접적으로 비추진 않는다. 달리의 그림들이 전시된 갤러리 오프닝 때조차 그림은 배경으로만 쓰인다.
달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기억의 지속’에 대한 영감을 얻는 장면도 그렇다. 젊은 시절의 달리가 동그란 치즈를 바라보다 치즈가 흐물흐물 녹아가는 모습, 벽에 걸린 시계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정작 그림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젤에 얹힌 캔버스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임을 보여줘, 그 작품이 ‘기억의 지속’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감독이자 넷플릭스 <그레이스>의 제작자인 메리 해론이 연출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벤 킹즐리가 달리 역을 맡았는데, 분장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마치 달리가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갈라 역을 맡은 바버라 수코바 역시 갈라와 매우 흡사하다. 애즈라 밀러가 달리의 젊은 시절을 연기해 짧게 등장한다. 우연히 달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제임스 린든 역은 크리스토퍼 브리니가 맡았다. 러닝타임 97분.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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