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최저 9위 때도 '야유'는 없었다…감독 이승엽, 충격 딛고 가을 반전 쓸까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감독이 야유를 받으리라 누가 쉽게 상상할까.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지난 16일 잠실 SSG 랜더스전에서 2-3으로 패하고 정규시즌 5위를 확정한 뒤 그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했다. 이 감독과 선수단이 가을 무대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하는 자리였다. 전광판 영상에 이 감독이 나올 때 관중석에서 일부 팬들의 큰 야유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 144경기에서 보여준 이 감독의 야구에 만족하지 못한 팬들이 행동으로 옮긴 결과였다.
두산은 지난해 창단 역대 최저 순위인 9위에 머물렀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KBO 구단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던 팀이 한순간에 9위까지 추락했는데, 이때 팬들은 야유보다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시리즈에 연달아 진출한 7년 동안 해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뛰며 지칠 대로 지친 선수들을 이해해서였다. 또 해당 기간 김현수(LG), 민병헌(은퇴),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양의지 이용찬 박건우(이상 NC) 주축 선수들이 대거 FA로 이탈하면서 갈수록 전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팬들도 "이만큼 버틴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지난해는 마지막 경기에 김태형 전 감독이 인사할 자리가 없기도 했지만, 어쨌든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는 일은 없었다.
두산은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지만,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점점 돌아서는 팬심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함께 느꼈다. 올 시즌을 앞두고 NC에 뺏겼던 안방마님 양의지를 역대 FA 최고 대우인 4+2년 152억원에 데려온 이유다. 그리고 리더십의 변화를 함께 꾀했다. 선수 시절 '국민타자'로 불린 레전드 이승엽을 감독으로 앉히면서 팀 내에 새바람이 불길 기대했다.
두산은 이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꽤 컸다.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이기도 했고, 일본프로야구 경험도 풍부한 만큼 세밀한 작전 야구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 또 한번도 베일을 벗은 적이 없는 감독 이승엽의 야구가 KBO리그에 신선한 볼거리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첫해부터 기대를 다 충족할 수는 없었다. 이 감독은 시즌 초반 이유찬, 안재석, 양찬열, 김대한, 송승환 등 젊은 야수들을 두루 기용하면서 키우려 했는데, 이 선수들이 기대보다 훨씬 더 성장하지 못했다. 1차지명 출신이라 가장 믿었던 안재석과 김대한은 부상으로 꼬인 실타래를 시즌 끝까지 풀지 못했고, 나머지는 경험이 부족한 티를 지우지 못해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는 중후반부터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투수는 그래도 김동주라는 수확이 있었는데, 중요한 상황에 쓰고자 했던 불펜 이병헌, 최지강, 김유성 등은 더 치고 나오질 못했다. 스프링캠프 때는 전력에 없었던 내야수 박준영과 투수 이영하가 각자 재활과 재판을 마치고 돌아와 힘을 실어주지 못했더라면, 더 힘든 시즌을 보낼 수도 있었다.
결국 시즌 중반부터 베테랑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야수 쪽에서는 김재호, 허경민, 양의지, 정수빈, 양석환 등이 계속 뛰어야 했고, 김재환은 타격감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데도 상황을 지켜보다 2군에서 재정비할 시기를 놓쳤다.
필승조는 과부하가 걸렸다. 시즌 내내 접전마다 김명신, 홍건희, 정철원을 투입했고 꽤 자주 멀티 이닝을 맡긴 결과였다.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세 투수가 모두 퍼졌고, 마지막에는 마무리투수가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홍건희도 정철원도 지쳐서 막질 못하니 김강률, 김명신, 박치국 등 당장 되는 선수들을 투입하기 급급했다. 필승조 붕괴는 3위 싸움에서 나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기존 두산 야구의 색깔도, 이 감독의 야구도 확인하기 힘든 시즌이었다. 스프링캠프부터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강조한 결과 팀 도루 133개로 리그 2위에 올랐고, 정수빈은 39도루로 생애 첫 도루왕을 차지했다. 팀 타율 0.255로 9위, 출루율 0.332로 8위에 머물다 보니 누구든 나가면 일단 뛰게 했다. 스몰볼을 추구했다기 보다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홈런이 적진 않았다. 팀 홈런은 100개로 한화 이글스와 함께 리그 공동 3위에 올랐다. 양석환(21홈런) 호세 로하스(19홈런) 양의지(17홈런) 김재환(10홈런) 등 주축 타자 4명이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결과다.
그런데 득점력이 떨어진다. 두산은 620득점으로 리그 8위에 머물렀다. 많이 뛰고, 큰 타구도 꽤 날렸으나 영양가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영양가를 높이는 게 지도자의 몫이라고 본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게 사실이다.
팬들의 야유는 곧 불만족에서 나온다. 5위보다 더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숱한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읽힌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팬들의 눈이 높다고도 볼 수 있고, 감독 이승엽을 향한 기대치가 크다고 볼 수도 있으나 어쨌든 그 기대를 채워야 하는 게 프로야구 감독의 숙명이다.
두산은 19일 창원NC파크에서 NC 다이노스와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을 치른다. 4위인 NC가 1승 메리트를 안고 시리즈를 시작한다. 두산은 무조건 1차전을 이겨야 2승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기고, NC는 1승, 1승1무, 1승1패를 해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생긴 이래 5위 팀이 단 한번도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1승 메리트는 꽤 크다.
페넌트 레이스와 단기전의 운영은 또 다르다. 이 감독이 지난 144경기에서 쌓은 경험이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는 제로 베이스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기전에서는 선수들의 집중력과 감독의 결단력이 승패를 결정하곤 한다. 이 감독은 포스트시즌 데뷔전에서 정규시즌의 아쉬움을 털고 팬들의 야유를 박수로 바꿀 수 있을까. 올해 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일단 1경기 벌어뒀으니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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