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진 "상금 2억500만원, 쓸 생각 없다" [인터뷰+]
변호사, 의사, 바둑 기사, 과학 유튜버 등 똑똑하기로 소문난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배우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은 전형적인 두뇌 플레이 게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연대와 화합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호불호도 이어졌다. 배우 하석진은 이들에 반발하는 대표 그룹이었다. 연출자인 정종연 PD가 "게임을 보이콧했다"고 했을 정도로 대세의 흐름과 다른 모습을 보였던 하석진은 마지막 반전을 쓰면서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우승 후 증가한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만 10만명. 하석진은 "방탄소년단 RM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이후 댓글이 3000개가 달린 건 처음"이라며 쏟아지는 관심에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성공 상금 2억5000만원은 트로피 같아서 앞으로도 쓸 수 없을 거 같다"는 하석진은 "애초에 우승에 대한 기대감도, 자신감도 없었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능동적인 삶의 마인드, 내 의지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제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부분들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주체적인 삶의 마인드를 갖고 살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은 하석진과 일문일답
▲ 우승 상금 2억5000만원을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쓰지 않았고, 앞으로 쓸 생각도 없다. 통장으로 입금이 됐는데, 트로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트로피를 금덩어리로 받았을 때, 그 금의 일부를 떼서 돌반지를 만들진 않지 않나. 그래서 건들고 싶지 않다. 평소에 쓰지 않는 통장으로 받아서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넣어 두고 종종 볼까 한다.(웃음) 함부로 쓸 수 없을 거 같다.
▲ 우승을 기대하고 출연했을까. 플레이가 진행되면서 심경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우승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유튜브로 선보여진) 여러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이런 두뇌 서바이벌 마니아들은 '이런 게임에서 이런 플레이를 한다'는 가상의 상황이 그려질 거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팬은 아니었다. 제가 출연해야 한다는 게 결정된 후 모니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반에 마인드 세팅이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늦었다. 관망과 탐색을 본의 아니게 하게 됐다. 그래서 초반엔 저조했다. 보여주는 게 없었다. 마라톤 중계를 보면 선두 그룹이 있고, 그 후에 쭉쭉 늘어간다면 전 중위권에서 뛰고 있었다. 그런데 피스를 푸는 순간 선두권에 같이 뛸 수 있는 게 됐고, 그때부터 선두와 각축을 벌이는 걸로 마인드 세팅이 바뀐 거 같다.
▲ 첫 게임인 마피아 게임부터 하석진 씨에게 좋은 패가 가고, 감옥 금고의 열쇠를 풀고, 오목에서 이겨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서 '제작진의 '치트키' 몰아주기가 아닌가' 싶은 인상이 들 정도였다.(웃음)
치트키는 모르겠고, (웃음) 응원의 느낌은 받았다. 특히 오목을 둘 때, 그 경기가 AI 오목 게임을 바탕으로 한 거였다. 제가 오목을 둔 건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제가 그 방에 들어갔을 때, (이)시원이도 이미 떨어졌고, 제가 이 비밀의 방에서 오목이 지면 프로그램이 흔들린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의 주인공을 보는 느낌도 받았다.
4일 차까지 '다 같이 살자'고 했지만, 그 분위기에 서로 질려가는 시기에 (곽)준빈이와 저의 날갯짓이 시작된 거 같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시원이와 둘이 감옥에 가게 된 것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저는 출연자고, 이건 방송이니까. 시원이는 미치려고 했다. 그래서 드라마틱하게 진행된 거 같다.
▲ 초반부 동맹을 맺은 김동재가 탈락했을 때 많이 분노했고, 이후 궤도의 공리주의로 게임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실패한 복지 정책을 보는 것 같다",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개인끼리 했다면"과 같은 뼈 있는 말도 했다. 이를 보고 "궤도에 반발하는 다른 사람들을 포섭해 새로운 세력을 만들고, 그를 탈락시켰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반응도 있더라.
동물 빙고를 할 때 정말 좌절하긴 했다. 내가 해보다 '인원이 필요하잖아'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서 했다면 덜 그랬을 텐데, 거긴 '어떡해야 해요'하면서 우왕좌왕하고, 그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게임을 주도하니 저 혼자서는 안 되겠더라. 거기에 대해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 거 같다. 동물 빙고는 기존의 게임 플랫폼에서 가져가도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애니팡스럽고, 경매가 있고,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그런 부분들이 모두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다.
▲ '공리주의'에 대한 반발인가.
이익이 여러 명에게 간다는 건 나쁜 말은 아니다. '데블스 플랜'에서 이 부분에 대해 말이 나오는 것도 서로의 가치가 다른 부분이다. 궤도는 '공리주의'를 내세워 '나만 승리하지 않고 타인까지 함께 이기게 했다'는 쾌감을 느끼려 한 게 아닌가 싶다. 저는 제 플레이하고, 질 때 지더라도 저만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 다른 플레이어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생존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아마 방송을 보면서 본인 스스로가 제일 아쉽지 않을까 싶다. 다음 시즌이 나오거나 서바이벌 장르의 프로그램이 새로 나온다면 다른 출연자들에게 참고가 된 게 있는 거 같다.
▲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이었지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제가 2번 운 것으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시원이가 떨어졌을 때, 또 하나는 오목에서 이겼을 때였다. 시원이가 탈락했을 땐 쓸쓸하고 외로웠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동료를 잃었다는 속상함이었고, 그 밤이 너무 길었다. 전 혼자 남았고, 그 공간이 좁고, 고통스러웠다. 이전까진 매일 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게임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게 더 힘들더라. 준비하는 게 싫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목을 준비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서 '해낼 수 있지'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방송인이 느끼는 그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다.
▲ 게임을 하면서 가장 쾌감을 느꼈을 땐 언제였나.
오목이였다.(웃음) 고통스러웠기에 쾌감도 컸다. 그날 밤, 극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앞둔 밤 같았다. 대사는 계속 연습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그게 나올 수 있을지 고민하다 잠을 못 자는, 비교하자면 그런 느낌이었다.
▲ 그 모습을 본 주변의 반응은 어떻던가.
다들 이겨서 좋다고 하더라. 엄마는 '이불 정리 좀 하고 가지'라고 하셨고.(웃음)
▲ 많은 출연자가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굳건하고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거 같았다.
부정적인 감정에 동요되지 않으려 했다. 다들 나갈 때 슬퍼하지 않나. 그런데 그걸 보며 저도 '울어도 되는 분위기인가' 싶더라. 시원이 떨어지고 눈물 흘린 건 '게임을 하다 왜 울어' 했던 것들이 '남들 다 울던데'하는 마인드와 '나 혼자야' 이런 게 복합적으로 섞여 나온 거 같다. '울고 싶으면, 울게 해줘야지' 하는, 스스로의 허락이 떨어진 거 같다. 그렇게 고통과 밤과 희열의 아침을 겪고 나니 오히려 다음 날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는 정도가 된 거 같다.
▲ 이시원과 동맹을 넘어 애틋함까지 보여 "멜로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더라.
방송에서 애틋한 멜로의 눈빛이 나오긴 했는데 저의 마인드도 이시원 씨도 모두 '전우애'였다. 다른 남자 출연자들도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다. 남녀의 에너지 스펙트럼은 다를 수 있어 보여지는 게 그런 게 아닐까. 멜로라고 하기엔, 저는 이시원 씨의 남편과도 친하다. 방송을 다 찍은 후 사석에서 다 같이 봤고, 굉장한 호인에 애주가라 저랑 잘 맞았다. 저는 괜한 풍파를 만들고 싶지 않다.(웃음)
▲ 본인이 생각하는 위기의 생각은 언제였을까.
저는 혼자 하는 성격이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못 되더라. 그래서 동재가 떨어졌을 때, 동물 빙고를 할 때 위기감을 크게 느꼈다. 아무 것도 못 할 거 같더라. 그때부터 불만도 쌓였던 거 같다.
▲ 프로그램을 보면서 몰랐던 자신의 모습도 봤나.
집중해지면 못생겨지는구나. 멋있는 집중의 표정은 드라마에나 있구나 싶더라.(웃음) 그 부분보다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다는 안도가 크다. 쓸데없이 감정표현 안 하는 것, 제가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밉상' 짓은 안 한 거 같다.
▲ 연기자인데, 예능의 똑똑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은 없을까.
연기자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이런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이 보지 않나. 창작하는 사람들도 보고. 작품이나 다른 예능에서나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저 부분이 있었네' '역할에서 보고 싶다' 하는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으로서 저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남았다. 40세의 내가 저런 마인드로 살았고, 합숙 환경에서 저렇게 남았구나. 기록이 남는 것에 저에게 크다. 못 이룬 부분에 대해 쳐내야 하는 거 같다. 감사한 기회다.
▲ 우승 후 달라진 인지도, 인기를 실감한 부분이 있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10만 명 정도 늘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15% 정도 늘어난 거다. 댓글이 3000개 정도 달렸는데, RM이랑 찍은 사진을 올린 후 처음이다. 국어랑 외국어랑 섞여 있는 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 외국 사람이 섞여 축하 메시지를 준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이렇게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때 많이 불러 줬으면 좋겠다. 달콤한 탕후루가 발라져 있으니 써먹어 줬으면 한다.(웃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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