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가 아니라 ‘대중 영화감독’이고 싶어

나경희 기자 2023. 10. 1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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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은 단 한 번도 영화감독이 된 걸 후회해본 적이 없다. ‘70%’ 만족하는 영화로 ‘손님이 들게 하는 것’. 그의 40년 경력의 비결이다.
9월22일 제작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 ⓒ시사IN 조남진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76)은 줄곧 겸연쩍어했다. “10년 전에도 기자가 인터뷰하자고 해서 30주년인 줄 알았다. 40주년도 꼭 기념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걱정과 의심이 교차했다. “왠지 ‘회고전’이라고 하면 은퇴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데다 과연 내가 회고전을 열 만큼 대단한 감독인가 싶기도 해서”다.

주위에서 등을 떠밀었다. 지난 9월6~14일 서울 아트나인에서는 ‘정지영 감독 40주년 회고전’이 열렸다. 그의 대표작 여섯 편이 상영됐다. 10월18일 영국에서 개막하는 제8회 런던 아시아영화제에서도 그의 40주년 회고전이 열린다. 9월22일, 출국을 앞두고 각종 기념행사와 새 영화 홍보로 바쁜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1961)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그 결심을 ‘합리화’시켰다. 초등학교 때 미술부였고 중학교 때는 문학청년이었는데, 또 노래를 한번 들으면 금방 외웠으니까. 영화라는 게 종합예술 아닌가.” 열일곱 살 정지영 감독은 ‘이만하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으니 영화를 해도 괜찮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북돋았다.

김수용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거쳐 1983년 첫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선보였을 때 정지영 감독의 나이는 서른여섯이었다.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약 20년이 흐른 뒤다. “지금은 다 디지털이지만 그때는 필름이었다. 어깨 너머로 배우다가 데뷔하는 거다. 첫 영화는 분량을 반 찍을 때까지 헤맸다. 이론도 다 알겠고 속으로도 자신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잘 안 되더라.”

2014년 10월3일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 1123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정지영 감독. ⓒ연합뉴스

제1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남부군〉(1990)을 찍을 때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앞서 1988년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 배급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배급(직배)할 수 있게 되자, 정지영 감독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첫 직배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뱀을 푼 적이 있는데 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정 감독은 〈남부군〉 촬영을 마치기 하루 전 체포되어 52일 뒤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이런저런 일로 손해를 많이 보기도 했다면서도 “세상에 문제가 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으면 못 참고 나서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였던 김진숙씨를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몸을 싣기도 했고,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기질은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드는 일에도 묻어난다. 정지영 감독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화를 각색해 대중성 있는 영화로 만든다. 석궁 테러 사건을 옮긴 〈부러진 화살〉(2011), 대공분실 고문 사건을 담은 〈남영동1985〉(2012), 론스타 게이트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블랙머니〉(2019) 등이 대표적이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주제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랑과 우정에도 반드시 사회적 환경이 깔려 있다고 본다. 북한 사회에서 사랑과 남한 사회에서 사랑이 같지 않듯이.”

정지영 감독이 붙드는 화두는 ‘인간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다. “어제는 어디에 있었는가, 오늘은 어디에 있는가, 내일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쉽게 말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지?’ ‘왜 이렇게 되고 있지?’ 하는 의문에 답하는 거다. 어느 소재든 화두는 비슷하다. 줄거리만 다를 뿐이다.”

실화 소재를 고르는 기준은 대중성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를 ‘손님이 든다’라고 표현한다. “원칙이니, 철칙이니 하는 건 위인전에서 지어낸 신화”라는 그가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지켜온 유일한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관객이 나와 함께하게끔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이해하려면 하고 말면 말라’는 식의 작품은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대중 영화감독이다.”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

관객들이 점점 사회 고발 영화를 외면하는 추세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비교적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는 항상 만들고 싶지만 관객이 봐주지 않으면 못 만든다. 그때가 되면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될까? 잘 모르겠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얼마 못 만들고 말 텐데." '사서 걱정'이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그는 관객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시대마다 취향이 변하더라도 관객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는 사실이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 소재를 선택하기 전에 늘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관심 없다고 하면 ‘이래도?’ 하면서 머릿속에 담아둔 걸 설명한다. 그래도 재미없다고 하면 하는 수 없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나 자신이 대중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으로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정지영 감독 역시 평가가 좋거나 ‘손님이 든다’ 싶은 영화는 두루 본다.

정지영 감독은 "현장에서는 어느 선에서 타협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기준은 '70%'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촬영할 때에도 정지영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현실이다. “감독이 자기 작품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혼자 글을 쓴다면 끝까지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아내겠지만 사람들과 같이 작업할 때는 그게 불가능하다. 제작비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계속 찍나? 현장에서는 어느 선에서 타협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기준은 ‘70%’다.” 그래서 특히 애착이 가는 영화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아니라 ‘같은 70%인데 왜 이건 버림받았지?’ 싶은 영화다.

‘70%’라는 기준이 언뜻 낮아 보이기도 하지만 40년 베테랑 감독은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100% 완벽주의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나.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서라도 작품이 완벽하게 나오면 좋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늘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되면 좋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허술한 듯 달관한 대답에서 그가 ‘4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온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는 11월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들〉은 정지영 감독의 열일곱 번째 작품이다. 이른바 ‘재심 사건’으로 유명한, 1999년 전북 완주군에서 발생했던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영화 역시 ‘70%’냐고 묻자 정 감독은 “지금까지 평가를 보면 내가 만든 영화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더라. 그렇다면 손님이 좀 들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제주 4·3 사건과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소재로 벌써 다음 작품도 진행 중이라고도 귀띔했다.

이 모든 ‘40년 외길’에도 불구하고 정지영 감독은 여전히 ‘사회파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글쎄, ‘비교적 사회파’라면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사회파 거장이라는 게 이 정도뿐인가 싶기도 하고. 정지영 감독 하면 ‘괜찮은 감독’. 이 정도가 딱 내 수준에 맞는 것 같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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