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미래’ 우리 옆의 녹색일자리

안산·신안/김다은 기자 2023. 10. 19. 06:0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녹색일자리 시대에 내가 속한 ‘일의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환경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녹색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달라진 일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 소속된 유희준씨는 태양광 설비기사로 일하고 있다. 태양광 설비기사는 탄소를 저감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표적 녹색일자리다. ⓒ시사IN 박미소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안산시민햇빛조합)은 태양광 설비기사 유희준씨의 두 번째 직장이다. 어느덧 입사 2년 차가 됐다. 스물다섯 살, 또래보다 일찍 취직한 유씨는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지금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 친구들은 ‘직업의 전망’이 급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전기 분야 업계가 워낙 다양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비전이 있는 회사는 어떤 곳일지 많이들 고민한다.”

유씨의 첫 직장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였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롭게 부상한 분야다. 이직한 지금의 직장도 친구들에게는 생소하다. “일반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에서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거니까 더 낯설게 느끼는 것 같다. 처우를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쁘다면 이직하지 않았을 거다. 노동조건도 좋고,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데 적극적인 분위기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유희준씨가 몸담았던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도, 현재 직장인 태양광협동조합도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터다. 대표적인 ‘녹색일자리’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lLO)는 녹색일자리를 ‘친환경적인 생산 과정에 종사하거나 환경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괜찮은 일자리’로 정의한다.

녹색일자리는 오해받는 직업이다. 지식집약적 노동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기술·연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만 허용된 일자리일 거라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화된 자본을 이용한 고도의 숙련노동’이 녹색일자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 더 주요한 녹색일자리의 특징은 ‘노동집약성’과 ‘지역성’이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녹색일자리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일자리를 예로 들었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설계부터 제작, 설치, 수송, 유지·보수·관리, 폐기 등에 이르기까지 일자리 사슬이 매우 길다.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기도 한다. 태양광 패널을 옮기는 트럭 운전사처럼 공급망 단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부터, 폐기·재활용 단계에 투입되는 노동자까지 광범위하게 녹색일자리 종사자가 된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산하 정치경제연구소(PERI)에서 발간한 ‘한국 에너지 대전환의 일자리 창출 효과 보고서’다. 한국 그린피스가 의뢰한 연구 결과로, 한국 정부의 탈탄소 정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적절한 투자를 할 경우 2030년까지 일자리 81만~86만 개, 2031년부터 2050년까지는 90만~120만 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특히 에너지 효율 부문·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학력 수준의 노동자에게 취업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봤다. 예를 들면 ‘빌딩 에너지 효율 제고’ 분야에서는 고졸 이하 노동자 비율이 65.2%로 국내 전체 노동인구의 학력 수준에서 고졸 이하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약 48%)보다도 높다. 숙련도에 따른 다양한 일거리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그림〉 참조).

노동집약성과 지역성이 특징

녹색일자리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화다. 재생에너지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에너지 공급체계가 중앙집중형에서 지역분산형으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다. 석탄화력·원자력 발전소 같은 대규모 중앙집중형 발전원과 달리 태양·바람 같은 재생에너지원은 밀도에 차이가 있지만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산형 에너지 공급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고 있다. 내년 6월부터 시행될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에너지특별법)’은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달리 책정할 수 있는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근거를 담고 있다.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일수록 요금이 내려가고, 수도권처럼 먼 지방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지역일수록 요금이 올라간다.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거리 송전 방식에서 벗어나 전력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 분산에너지특별법은 전국 어디서나 전력 생산과 관련된 일자리를 늘릴 초석인 셈이다.

새로운 일자리만 녹색일자리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녹색일자리가 기존 전통적인 직업과 상관없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이자 청년만을 위한 일자리일 거라 생각하지만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탄소중립 시대가 되면 두 명 중 한 명은 녹색일자리에 종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직업이 ‘녹색화’되는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 운전기사는 탄소중립 시대에 공공교통 시스템을 떠받치는 필수 노동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스 기사와 녹색일자리를 쉽게 연관시키지 못한다. 승용차 중심으로 교통체계가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버스 운전기사의 노동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유진 소장의 말이다. “왜 우리 사회에서 버스 운전기사는 녹색일자리가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기존 직업이 녹색일자리가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해 해당 노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직업을 녹색화할 때는 그것이 ‘괜찮은 일자리, 해볼 만한 일자리’가 되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궁금증은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된다. ‘예고된 미래’인 녹색일자리 시대에 내가 속한 '일의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환경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녹색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달라진 일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자리 태양광 설비기사

안산시민햇빛조합 태양광 설비기사 유희준씨를 만난 곳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단독주택이었다. 주차장 흙바닥 위에 시멘트를 붓고, 그 위에 골재를 세워 3kW(3000W) 용량의 태양광 패널 모듈을 올리는 작업 준비로 분주했다. 일반 아파트 발코니 난간에 설치하는 미니태양광 패널 모듈 ‘한 판’은 한 시간에 약 330~350W 전기를 생산한다. 아파트 난간에는 안전문제 때문에 패널이 한 개만 들어갈 수 있지만 이번 현장 같은 단독주택은 더 큰 용량을 설치할 수 있다.

태양광 설치의 걸림돌은 이웃의 문제 제기다. 대표적인 게 ‘패널이 더러워지면 세정액을 써서 청소를 할 텐데 그때 건강에 나쁜 물질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염려다. 그럴 때마다 가정에 설치하는 작은 태양광 패널은 비바람에 의해 오염물질이 저절로 씻겨 나간다고 설득한다. 빛반사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모듈의 각도를 조정한다.

유희준씨는 요즘 수면 위에 짓는 태양광 발전시설인 ‘수상 태양광’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3월 환경부는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제품 생산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19곳에 1.1GW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산림 훼손이 없는 데다 기울기 없는 평평한 수면 위에 패널을 설치하다 보니 지상 태양광보다 발전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유희준씨와 함께 일하는 박성국 시공팀장은 40대가 되어 전기기사 자격증을 딴 뒤 안산시민햇빛조합에 취업했다. 중년의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선택한 이유는 재생에너지 기술이 미래 기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져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자격증 시험부터 준비하면 된다. 앞으로 쓸 일이 더 많은 기술이다.”

‘앞으로 쓸 일이 많다’는 박 팀장의 말은 추측이나 기대가 아니다.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0년 설치된 지붕형 태양광 보급 용량은 1099MW로, 625MW였던 2018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태양광을 지붕에 설치할 경우(즉 발전효율을 높일 경우),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받을 때 가중치가 두 배 이상 높다. 쉽게 말해 발전사업자가 한전에 전기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산업단지 내 공장 지붕이나 옥상 등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산단 태양광’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국내에 있는 1257개 산업단지 공장 지붕 모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경우 발전량이 최대 54GW급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원전 약 54기를 돌리는 양과 맞먹는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발전 잠재량’을 ‘실제 발전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 곳곳에 ‘녹색일자리’가 있다.

녹색 소득이 있는 일자리 에너지협동조합원

지난 9월 광주광역시에서 전국 최초로 청년들이 발족한 늘품청년햇빛발전협동조합이 출범했다. ⓒ늘품청년햇빛조합 제공

유희준, 박성국 두 사람이 속한 안산시민햇빛조합은 국내 최대·최다 태양광발전소를 세운 협동조합이다. 2013년 창립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창립한 해에 안산시 호수동 중앙도서관 옥상에 한 시간당 30kW 규모의 1호 발전소를 설치했고, 현재 발전소 41개를 운영 중이다. 태양광의 하루 평균 발전 시간을 3.8시간으로 적용할 경우(한국 평균 일조시간에 그늘·먼지 등 태양빛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고려해 계산한 일조시간), 41개 발전소에서 한 달에 만들어내는 발전량은 4인 가구 1680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가구당 월평균 전기 사용량 307kWh 기준)이다. 이렇게 줄인 탄소감축량은 연간 2만t에 이른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안산 시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데, 현재 조합원 수는 1472명이다. 조합원 한 명당 1년 동안 탄소 13t을 저감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성장 중이다. 현재 누적 출자금 규모는 49억5000만원이며, 지난해 매출액만 59억원에 이른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 판매와 태양광 설치·전기공사 수입 등으로 매출을 얻는다. 수익은 조합원 배당금과 사회공헌비 등으로 사용된다. 출자금 배당률은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5%)보다 높은 6%다.

9월19일 방문한 안산시민햇빛조합 사무실에서는 서수원IC 인근에 들어설 예정인 1만6000MW 용량의 발전소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안산시민햇빛조합 소유의 발전소는 아니지만 몇 년째 공들여 진행 중인 사업이다. 조항오 안산시민햇빛조합 본부장은 “이 발전소는 경기도 내에 있는 30개 이상의 에너지협동조합이 함께 만드는 발전소다. 부지 확보에만 3~4년이 걸렸다. 아직 자립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에너지협동조합을 키우기 위해 우리 조합도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안산시민햇빛조합이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공공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여 년간 지자체와 협의해온 노하우는 다른 협동조합들의 ‘공동 자산’이 되고 있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 것’은 에너지협동조합의 지향이기도 하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무한한 공공 자산으로 얻은 수익을 많은 시민과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조항오 본부장은 “지금까지 전력과 관련된 일자리는 한국전력공사 등 큰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제는 개인이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투자하거나, 협동조합 조합원이 됨으로써 녹색일자리 종사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신재생에너지 육성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월에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가 기존 30.2%에서 21.6%로 줄었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 역시 올해 1조489억원에서 6054억원으로 42% 삭감됐다.

에너지협동조합에는 타격이 없을까? 태양광 사업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역량과 관심에 따라 대응책은 다르다. 경기도의 경우 RE100(기업에서 쓰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선언한 대기업이 많다. 그렇다 보니 에너지협동조합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4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 RE100 비전’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9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확충하고, 공공기관 역시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너지협동조합 모델은 다양한 계층에 확산 중이다. 9월7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청년들이 참여하는 ‘늘품청년햇빛발전협동조합(늘품청년햇빛조합)’이 만들어졌다. 학교 밖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징검다리 배움터 ‘늘품’의 졸업생들과 교사가 태양광발전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이 협동조합은 이사장 등 발기인 5명이 모두 청년이다. 만 25세인 임채은 이사장은 탈학교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직장을 구할 때, 더 나은 사회와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회사든 들어가서 돈은 벌 수 있겠지만 청년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광주 빛고을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빛고을햇빛협동조합)의 도움이 있었다. 빛고을햇빛협동조합은 늘품청년햇빛조합이 창업지원금 7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늘품청년햇빛조합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녹색일자리’를 청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늘품청년햇빛조합의 내년 목표는 재생에너지 시민교육을 확대하고, 100kW 발전소를 하나 갖는 것이다.

‘녹색화’된 일자리 버스 운전기사

전남 신안군은 전국 최초로 버스 완전공영제를 도입했다. 김성숙씨는 신안군 팔금면에서 수요응답형 관내 버스인 1004 버스를 운전한다. ⓒ시사IN 박미소

전라남도 신안군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버스 완전공영제를 시행한 지자체다. 완전공영제는 버스 노선권을 지자체가 갖기 때문에 ‘비수익 노선’에도 재정을 투입해 배차할 수 있다. 2007년 압해도를 시작으로 7년에 걸쳐 신안의 14개 버스업체를 인수해 노선권을 확보했다. 완전공영제가 도입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버스 이용객은 연간 19만명에서 67만명으로, 버스 운행 대수는 22대에서 75대로, 버스 운전기사도 25명에서 9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신안에는 일반 공용버스(65세 이상 무료, 일반 1000원, 청소년 500원)와 ‘수요응답형’ 관내 버스인 1004 버스(20세 미만과 65세 이상 등 교통약자 무료, 그 외 1000원)가 운행된다. 버스공영제가 교통약자를 위한 복지 시스템인 것만은 아니다. 그 자체로 녹색일자리 창출의 모델이다. 9월14일 〈시사IN〉 취재진은 전남 신안군 팔금면을 찾아 1004 버스에 동행했다. ‘1004’는 섬 1004개로 이루어진 신안군을 상징하는 숫자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섬마을은 사방이 젖어 있었다. ‘빵~’ 하는 경적 소리가 운무를 뚫고 신안 섬마을 팔금도를 깨웠다. 운전대를 잡은 김성숙씨가 1004 버스의 속도를 서서히 낮추며 버스 정류장 없는 마을의 골목을 누볐다. 경적 소리를 들은 동네 주민들이 낮은 돌담 너머로 얼굴을 들어 눈인사를 했다. 마침 김성숙씨의 전화기가 울렸다. 주민 정옥자씨였다. 늘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김씨는 정씨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그의 집 앞으로 버스를 몰았다.

버스에 올라타던 정씨가 말했다. “내가 감자 좀 캔다고 이제야 외출할 채비를 마쳤어. 추석이 오니까 방앗간에 기름 짜러 가야제.” 정옥자씨는 오늘 벌써 두 번째로 1004 버스를 탔다. “아침 5시 반에 1004버스 타고 공공근로 하러 가거든. 11명이 다 같이 이 버스 타고 일하러 가는데 이거 없으면 그 이른 시간에 우리가 다 어떻게 거길 가겠어. 노인들한테 너무 다행이고 고맙지.” 병원에 가려는 이웃도, 마트에 가려던 이웃도 각자 집 앞에서 1004 버스에 올랐다. 김성숙씨는 내비게이션 한번 찍지 않고 마을 곳곳 주민들의 집을 누볐다.

1004 버스는 배차시간도, 버스 정류장도 없다. 용무가 있는 주민이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하면 직접 데리러 간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가 도입한 대표적인 교통복지 서비스다. ⓒ시사IN 박미소

1004 버스는 일반 버스가 닿지 않는 작은 섬을 오가는 24시간 버스다. 배차시간도 정류장도 정해진 게 없다. 용무가 생긴 주민이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면 버스가 주민이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신안에는 이런 1004 버스가 총 10대 있는데, 운전기사 20명 중 여성이 5명이다. 군에서 재정을 투입하면서 처우가 개선되고 고용이 안정되자 여성 운전기사가 늘었다. 현재 신안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4대 보험과 60세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고 자신이 원할 경우 67세까지 일할 수도 있다.

김성숙씨는 4년 전인 2019년, 서울에서 신안으로 귀향했다. 신안에서 노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1004 버스를 도입한 해다. 팔금면 1004 버스 운전기사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김씨가 취업했다.

김씨는 신안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대형 버스를 1년 넘게 몰았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물었다. “봉급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하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서울에서 버스를 운전할 때는 출퇴근 시간에 승객들로 꽉 찬 버스를 운전하는 게 힘들었다.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온전히 기사 책임이다. 버스 기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신안, 화성, 정선 등 전국 10여 곳 지자체에서 완전 혹은 일부 공영제를 채택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광역시에서 도입한 준공영제는 민간 버스회사들이 버스 노선권을 갖되 운행 및 서비스 등에서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대신 민간업체는 운행 실적에 따라 지자체로부터 사전에 정해진 운송원가를 보전받는다. 민영제의 경우 대다수가 ‘재정지원형 민영제’다. 적자 노선 운영 등을 위해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준공영제와 민영제에서는 인사권 등도 민간 회사가 가진다.

2007년 당시 공영제 전환 업무를 담당했던 김형수 신안군청 교통지원과 육상교통팀 팀장은 준공영제든 민영제든 시민들의 세금으로 버스 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하지만 이동 공공성 면에서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영제인 목포의 경우 버스 155대를 가진 큰 업체가 있다. 이 회사에만 1년 재정지원금이 110억원 들어간다. 하지만 승객들은 교통 편의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 비용이 서비스 개선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시 2004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2019년까지 총 4조320억원에 달하는 운송 적자를 지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김형수 팀장은 민간사업자의 이윤 보전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대중교통의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지자체가 직접 투자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신안의 경우, 공영제가 도입되어 버스가 늘고 정시 운행을 하자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리질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친구들도 버스에서 만날 수 있으니 눈에 띄게 이용자가 늘었다. 이들이 읍내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지역 상권도 활성화됐다.

우리나라 버스 운영체계는 공영제, 준공영제, 민영제로 나뉜다. 준공영제와 민영제에도 지자체의 재정 지원금이 투입된다. ⓒ연합뉴스

버스공영제는 미래를 향한 ‘그린뉴딜’ 정책이기도 하다.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교통 분야의 녹색 정책이 주로 ‘전기차 보조금’에 치중되어 있는 현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기차 보조금도 결국은 승용차를 타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승용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버스공영제를 하자고 하면 예산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유류세 같은 세원을 대중교통 기금 등을 조성하는 데 쓸 수 있도록 재정구조를 바꿀 수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공공화되어 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수송분담률이 높아지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녹색 교통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

신안의 다음 목표는 전기버스 도입이다. 원래 신안군의 버스 75대는 모두 경유 버스였는데, 탄소 저감을 위해 2027년까지 관내 모든 공영버스를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다. 실제 작년에 6대, 올해에 6대를 전기차로 바꿨다. 내년에는 14대가 교체될 예정이다. 신안의 완전공영제는 지자체의 의지가 교통 인프라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주민들과 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녹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안산·신안/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