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학살” 이슬람권 분노… 바이든 ‘중동 외교’ 시험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 간 바이든에 대형 악재
확전 방지·인도주의 구상도 ‘흔들’
이·하마스 ‘공습 책임’ 진실 공방
바이든 “이 지지… 민간 보호 협력”
아바스 수반 “이, 레드라인 넘어”
“美·이에 죽음을” 중동 전역 시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에서 발생한 폭발 참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촉발된 중동 정세가 중대 기로에 놓였다. 가자지구에서의 인도주의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시설 공격이 이뤄지면서 이 행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면서 사태 해결도 점점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가자지구 병원 참사 소식이 전해진 뒤 이슬람권 동요와 분노가 심상찮다. 17일(현지시간) 아랍·이슬람권 국가들이 극도의 분노를 표시하고, 각국에서 시위가 촉발하는 등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이 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군의 이번 공습이 ‘병원 대학살’이라고 비난하며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모든 레드라인을 넘었다”면서 “우리는 그곳(가자지구)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우리를 그곳에서 추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전용기에 오르기 전 병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기존 순방 일정을 변경해 이스라엘만 방문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뒤 요르단으로 향해 요르단 국왕과 이집트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4자 정상회담을 열어 전쟁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순방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며 계획이 어그러졌다.
18일 이스라엘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개인적으로 와서 이스라엘에 지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다”며 “우리는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비극이 더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분(이스라엘)과 역내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공격으로 확인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중동 순방 목표로 밝힌 확전 방지와 인도주의적 위기 해결방안 마련, 이스라엘 지지 중 대부분의 구상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리처드 고완은 유엔 담당 국장은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끔찍한 사건 때문에 외교가 더 힘들어지고 긴장이 격화할 위험이 커진다”는 견해를 로이터에 전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서방국에 대한 아랍·이슬람권 국가의 분노도 향후 상황 전개를 흔들 변수로 꼽힌다. 레바논의 반이스라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18일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삼자. 거리와 광장으로 즉시 가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촉구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튀니지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도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튀니지에서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들의 동맹인 미국의 대사관을 철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흘리 아랍 병원은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깊은 지역의 중심에 있는 평화와 희망의 안식처입니다.”
17일(현지시간) 공습을 받아 최소 471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아흘리 아랍 병원에 대해 성공회 예루살렘 교구는 이같이 설명하고 있다. 1882년 영국 선교사들이 설립해 가자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이 병원은 80개 병상을 갖추고 매년 4만5000명의 주민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있다.
기독교에 뿌리를 둔 성공회가 운영 중인 병원이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병원 이름 자체가 ‘아랍 사람들의 병원’이라는 뜻의 아랍어다. 직원들도 대부분 무슬림이다. 병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환영합니다.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병원 측은 잇단 국경 충돌과 불안, 2018년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미국의 자금 지원(연간 약 3억5500만달러) 중단, 코로나19 대유행 등 최근 수년간 겪은 어려움 속에서도 의료진은 수질 오염, 식량난, 정신적·사회적 트라우마, 의약품·연료 부족 등 끔찍한 환경에 처한 환자들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평화의 안식처였던 이곳은 결국 민간인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병원 건물을 불길이 뒤덮었고, 참혹한 시신 대다수는 어린이였으며, 주변 잔디밭에는 담요와 책가방 등이 나뒹굴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을 관할하는 성공회 예루살렘 교구는 성명을 내고 “국제적 비난과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며 “헌신적인 직원들과 연약한 환자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공격에 애도하며 연대해주기를 간청한다”고 밝혔다.
세계를 경악시킨 이 병원 공습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의 오폭 때문이라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TCT)에 따르면 1979년 창설된 PIJ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이다. 알쿠드스여단이라는 군사조직을 갖추고 이스라엘에 박격포, 로켓, 자살폭탄 공격을 주로 벌인다.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지구, 레바논, 시리아에도 지부가 있다. 하마스와 공조를 취할 때가 많으나 대이스라엘 전략을 두고 양측이 긴장 관계에 놓일 때도 많다. 두 조직 모두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이스라엘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PIJ 측은 “시온주의 적(이스라엘)이 잔인한 학살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PIJ는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 폭발 규모, 폭탄 낙하 각도 등이 모두 이스라엘의 소행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유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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