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영화의 위기, 한국 영화인들의 '돌파구' 고민
7월 관객수 역대 세 번째로 낮아…올 추석 역대 최저 매출액
"한국영화 경쟁력 약화…성수기에 걸맞은 흥행작 못 내놔"
팬데믹 거치며 '영화'에 대한 개념도, 관객들 눈높이도 변화
극장서 관람해야만 하는 이유 제공하는 영화 중요성 높아져
강제규 감독 "관객 잣대만큼 작품에도 엄격한 기준 갖다 대야"
관객에 필요한 영화, 이야깃거리 많은 작품·새로운 캐릭터 필요
송강호, 하정우, 설경구 등 이른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배우는 물론이고 최동훈, 김용화, 강제규, 김지운 등 내로라하는 스타 감독들 역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제작, 마케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꺼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통용되던 흥행 공식은 깨졌고, 관객들의 관람 행태도 바뀌었다.
끝나지 않는 침체 속 영화 창작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위기의 원인은 '영화'다. 그리고 이를 타개할 해법 역시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의미를 가장 기본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관객·매출 모두 감소…여전히 침체에 빠진 韓 영화
올 상반기 한국 영화 매출액은 2122억 원, 관객 수는 2105만 명으로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보다 각각 54%, 44% 감소했다. '범죄도시2'의 1천만 관객 동원 이후 반짝 희망을 봤다가 다시 위기를 절감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각각 5.9%, 6.3% 낮아진 수치다.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된 7월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7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333만 명으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한 2004년 이후 7월 가운데 2021년 7월과 2007년 7월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8월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내놓은 소위 '빅4'의 여름 성수기 한국 대작 영화 4편 중 8월에 매출액 400억 원, 관객 수 4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없었다. 여름 대목인 8월 첫째 주에 동시 개봉한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과 '더 문'(감독 김용화)도 8월에 매출액 100억 원을 넘기지 못하면서 '한산: 용의 출현'이 흥행했던 지난해 8월 대비 한국 영화 매출액, 관객 수 모두 감소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8월 시장 규모가 줄었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의 한국 영화 인력 진출이 늘어 한국 영화 경쟁력이 약화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대작 영화 4편이 여름 성수기로 몰려 과열 경쟁이 벌어진 탓에 한국 영화는 여름 성수기에 걸맞은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8월 한국 영화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 평균 매출액의 절반을 겨우 넘겼고,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추석 대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9월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9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017~2019년 9월 평균의 47.1% 수준에 머물렀다. 역시 한국 영화 3편이 같은 날 동시 개봉해 과열 경쟁을 벌인 탓에 추석 대목에도 불구하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한 게 원인이다. 결국 올해 추석 연휴 전체 매출액은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2008년 이후 추석 연휴 사흘 기준으로 역대 최저 매출액을 기록했다.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 제공한 영화는 '성공'
지난해 '범죄도시2'가 코로나19 시대 첫 1천만 관객 돌파 영화이자 '기생충' 이후 3년 만에 1천만 돌파라는 위업을 이루자 영화계에서는 "생태계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범죄도시2'의 흥행 이후 한국영화 부진은 202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영화 관람의 주요 플랫폼은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로 중심을 이동했다. 관객들은 여전히 OTT와 극장 사이 경계에서 쉽사리 극장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 OTT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접해 온 관객들 눈높이는 높아진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슷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비슷한 장르와 이야기의 극장용 영화로 눈을 돌리기 어렵다는 지적 역시 반복되고 있다.
'밀수'로 올여름 흥행에 성공한 류승완 감독은 "(영화적 체험이) 요즘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된 것 같다"며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많이 바뀐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관객들은 어린 시절부터 휴대폰으로 영상매체를 보는 데 익숙해졌다. 영화의 사전적 정의라는 게 20세기에 만들어진 건데, 세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개념도 바뀌어 가고 있다"며 "이에 대해 관객들이 틀렸다고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큰 변화를 맞이할 것 같다"며 "극장이 사라질 거 같진 않고, 형태의 변화가 생길 거 같다. 그래서 극장용 상영 영화도 그에 맞게 변화가 생길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영화가 100만 관객도 넘기 힘든 상황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엘리멘탈' 등 애니메이션과 '탑건: 매버릭' '아바타: 물의 길' 등 외화는 승승장구하며 1천만 고지를 넘기도 했다. 영진위는 "뉴노멀 시대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제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짚었다.
CJ CGV 조진호 국내사업본부장 역시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며 관객들의 영화 선택이 까다로워지고, 눈높이도 높아졌지만 '범죄도시3'나 '엘리멘탈' 같이 볼 만한 콘텐츠가 개봉하면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영화 흥행을 주도하는 세대와 연령대의 폭이 넓어지고, 콘텐츠별로도 세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감독·제작자가 생각하는 '극장용 영화'의 의미
결국 모든 이야기는 '영화'라는 콘텐츠로 귀결된다.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가 있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창작자들은 영화를 통해 여전히 극장이 살아있고, 한국 영화가 계속될 것임을 보다 더 부단하게 증명해야 하는 과제와 맞닥뜨렸다.
강제규 감독은 '극장용 영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에 관해 "결국 어떤 영화가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워진 극장의 문턱을 뛰어넘는 작품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관에서 봤을 때 가장 큰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관객들의 잣대가 엄격해진 만큼 (감독도) 작품에 임할 때 그 기준을 정말 엄격하게 갖다 대야 한다"며 "그러한 엄격함과 진중함이 관객을 감동시키고, 관객들이 극장에서 원하는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상향 조정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스토리를 발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잠'을 제작한 루이스픽쳐스의 김태완 대표는 할리우드가 갖고 있는 '공학적 기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기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듯이 시나리오가 가진 폭발력 등을 공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힘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제작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김 대표는 제작자 입장에서 '극장용 영화'란 이른바 '생활필수품형(생필품형) 영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티켓값이 소확행으로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고, 그렇다면 생필품 수준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고민하는 이슈를 말하고 있는지가 기획에 보여야 하고,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게 확실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D.P.' '지옥' 등의 시리즈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영화를 제작하며 팬데믹 시대가 만든 변화의 최전선에 선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변승민 대표는 흥행 공식이 바뀌고, 관객들도 변화한 시대에서 선보여야 할 영화는 "뒤가 궁금한 영화"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과거의 흥행 영화들은 뚜렷함을 강조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뚜렷하더라도 뭔가가 혼재돼 있거나 아니면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빈 곳이 있는 영화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니면 '탑건: 매버릭'이나 '범죄도시' 시리즈와 같이 그 전에 못 봤던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서 확실하게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사랑받았다고 본다"며 "이제 그런 지점에 대한 탐구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파고들기]장르가 된 마동석…이유 있는 '범죄도시' 쌍천만
- [파고들기]OTT 공세·무너진 홀드백…극장 역할 확대 중요
- [파고들기]100만 넘기도 힘든 韓 영화…진짜 문제는 '콘텐츠'
- [EN:터뷰]개척자 강제규 "韓영화 미래, 관객 마음 훔치기"
- [EN:터뷰]"코로나 이후 영화요? 시대 고민 담은 생필품이죠"
- [EN:터뷰]'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흥행…아직 배고픈 클라이맥스
- [EN:터뷰]김용화 감독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 [EN:터뷰]류승완 감독, '영화'를 말하다
- [일문일답]"틀린 청춘은 없다"…美日 열광 재즈 애니 '블루 자이언트'
- [EN:터뷰]배우 홍사빈의 길에 '화란'이 꼭 필요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