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속도조절’ 들어간 ESG공시 의무화, 당국은 오히려 속도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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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지난 16일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도입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ESG 공시 도입 연기는 어떻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은 국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늦춰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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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지난 16일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도입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26년부터도 아닌, ‘2026년 이후’라는 모호한 시점을 댔다. 당장 2025년부터 ESG 공시를 내야 할 뻔했던 기업들은 ‘시간을 벌었다’라며 금융위의 결정을 환영했다.
하지만 금융위에 이번 결정은 ‘시간을 번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빚진 것’에 가깝다.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글로벌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제도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질수록,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줄어들게 된다. 금융위는 빚이 불어나지 않도록, 빨리 구체적인 기준과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6년에라도 ESG 공시가 시행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ESG 공시 도입 연기는 어떻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 2021년 초 금융위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는 의무 공시 대상을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10월 초까지도 금융위는 묵묵부답이었다. 올해 하반기 공시 의무화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발표하겠다는 애매한 일정 외에는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었다.
이달 초까지도 지침이 없자, 기업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은 국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늦춰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SG 공시를 위한 명확한 기준이 4분기에 접어들도록 나오지 않았는데, 이를 어떻게 준비해서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냐는 것이다.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취합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세계적 ESG 공시 가이드라인인 ISSB 지침도 지난 6월 발표돼 한국어 번역본도 없다. 기업들은 급한 대로 따라 할 해외 사례도 극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금융위가 기업의 준비가 부족하다며 제도 시행 시기를 미뤄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ESG 공시를 위한 구체적 기준을 언제 발표할지, 국내 기업에 어떤 지원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ESG 데이터 취합·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비용 등을 생각하면 기업 입장에서 제도 도입을 반기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ESG공시는 피해 갈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2024~2025년부터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를 자국 시장에 진출한 해외기업에도 요구할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의 해외 기업과 경쟁하고, 글로벌 ‘큰 손’들의 투자를 받는 데 ESG 공시 내용이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 2011년 기업 회계 기준체계를 GAAP에서 국제기준인 IFRS로 바꾸면서 ‘졸속 시행’ 논란이 일었다. ‘기준 해석이 모호하다’, ‘국내에 맞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제도 시행을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제도는 도입됐고, 1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대표 회계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피할 수 없다면, 하루빨리 제도를 도입해 적응하는 것이 더 낫다. 덮어놓고 미루기만 하는 것엔 실익이 없다. 금융위는 서둘러 국내 ESG 공시 기준과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하고, 기업이 이에 맞춰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 시간을 줬다고 해서 정부도 같이 퍼져 있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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