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안좋은 베트남전, 차라리 호찌민 갔다면 [이재호의 할말하자]

이재호 기자 2023. 10.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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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경기를 마치고 귀갓길. 수원 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축구팬들은 하나 같이 기쁨에 찬 얼굴로 "재밌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럴만도 했다. 한국 축구 최고 스타 3인방인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가 모두 득점했고 전반 초반부터 골이 나와 후반 막판까지 쉬지않고 6골이나 넣으며 대승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기분 좋은건 물론 선수들도 많은 인원이 돌아가며 골을 넣고 경기를 잘했으니 기분 좋았을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비판에 6-0 이라는 결과로 말했으니 행복했을 것이다(실제로 클린스만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행복했던 열흘"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도 4만2000석이 넘는 수원 월드컵경기장을 매진 시켰으니 좋았을 것이며 관계가 좋은 베트남 축구협회와도 다시금 돈독한 관계를 다질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게다가 베트남을 불러들이는데 대전료도 들이지 않았으니 일석삼조였을지 모르겠다.

ⓒ연합뉴스

▶모두가 행복하다고 한국 축구를 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행복하니 된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게 한국 축구를 위한 경기였을까. '월드컵 16강,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하는 한국에게 지난 월드컵 본선은커녕 아시아 최종예선 참가가 박항서 감독 덕에 처음이었던 베트남을 '홈'까지 불러들여 경기하는 것이?

경기장을 찾는 한국 팬들은 상대팀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경기를 통해 증명됐다. 상대팀이 강하고 유명한 선수가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아이돌 멤버처럼 되어버린 대표팀 선수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게 현재 대표팀 경기를 찾는 팬들의 구성이다.

실제로 현재 대표팀은 손흥민, 이강인, 설영우, 조규성 등 미남 스타들로 이뤄져 경기장에 10~20대 여성들이 친구 혹은 남자친구를 데려와 보는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이것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100살의 남자 관중이든 20살의 여성 관중이든 축구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면 된다. 중요한건 어떤 매치업이든 많은 관중이 찾는 현재의 환경에 취해 대한축구협회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음으로 홈경기 개최에만 매달려 있는게 아닌가다.

한국 최고의 선수들을 불러들이는데 급여는 주지 않아도 되고 튀니지-베트남전 합산 10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는데 정말 적게 잡아 인당 3만원의 티켓값만 잡아도 30억원이 넘는 수익이 발생한다. 튀니지에 대전료를 줘봤자 얼마나 줬겠으며, 베트남에게 대전료는 필요치 않았다. 괜히 '손흥민, 이강인 장사에 맛 들였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게 아니다. 

대표팀의 '아이돌화' 속 여성팬으로 가득찬 대표팀 경기. ⓒ연합뉴스

▶일본 칼럼이 한국에게 주는 울림

올해만 해도 한국은 지난 9월 영국 원정을 떠난 것을 제외하곤 3,6,10월의 A매치 기회를 모두 홈에서 치렀다. 3월에 콜롬비아-우루과이와의 상대는 괜찮았지만 6월 페루-엘살바도르는 냉정하게 그리 강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한국은 1무1패에 그쳤다. 그나마 유일한 원정 A매치였던 9월은 영국까지 갔음에도 유럽에서도 중하위권팀인 웨일스와 경기했고 또한 굳이 유럽까지 가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했다.

그리고 10월 A매치 상대들은 2경기 10득점이 말해주듯 강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시안컵전까지 공식적으로 잡혀있는 A매치 평가전 기회가 모두 소진됐다. 11월부터는 싱가포르와의 홈경기, 중국과의 원정경기로 치러지는 북중미 월드컵 예선을 해야한다. 그리고 나면 곧바로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64년만에 우승을 노리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연습은 하고 아시안컵에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지난 64년간 '아시안컵 우승'없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자위하는 민낯을 또 보게될까.

일본 언론 닛칸 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세르지우 에치고는 9월 일본이 독일 원정에서 4-1 역사적인 대승을 거둔 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럽에서 원정 A매치를 가지는 것은 수십억엔의 비용이 들 것이고 일본축구협회는 이로 인해 당장은 경제적으로 힘들 수 있을 것이다"라며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투자다. 그 경험은 3년뒤 월드컵에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 월드컵에서의 성적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10월 A매치에서 일본이 캐나다를 홈으로 불러들여 4-1 대승을 거둔 후 냉소적으로 "베스트 멤버를 갖춰 경기할 정도로 캐나다는 강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상대와 할바에는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이란과 같은 아시아 강팀과 경기하는게 나을뻔 했다. 서로 자존심이 있으니 더 열심히, 진심으로 경기했을 것"이라며 "일본 축구협회는 재정과 스폰서 측면에서 국내 평가전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원정은 1년에 1회 정도인데 이런 환경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앞으로 친선경기는 모두 유럽에서 하는 과감한 변화가 있지 않는한 월드컵 상위레벨을 도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확하게 한국 축구에도 적용되는 일본 칼럼니스트의 글이다. 매번 '월드컵 16강', '아시안컵 우승'을 외치는데 대한축구협회는 베트남을 홈으로 불러 들여 기분만 내며 웃고 있다.

매진된 수원월드컵경기장. ⓒKFA

▶베트남 '원정 경기'를 했다면 응원했을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베트남과 같은 약팀을 상대하는게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에 "수비적으로 하는 팀(약팀)을 상대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배웠다"며 베트남전에 의미가 있었다고 방어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베트남과 A매치를 못할건 없다. 하지만 이 경기를 원정을 떠나 베트남 호찌민에서 했다면 여론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며 심지어 응원했을 것이다. 동남아 원정을 가 그곳의 무더운 날씨와 열악한 환경, 일방적인 응원과 불합리한 판정 등을 겪어보는 것은 아시안컵을 대비해 한국에게 훨씬 가치있는 경기였을 것이다.

베트남 원정은 결코 쉽지 않다. 마지막 베트남과의 A매치였던 2004년 9월 베트남 호찌민 원정에서 한국은 후반 4분 자책골로 인해 선제 실점을 하며 끌려가다 후반 18분 이천수의 크로스를 받은 이동국의 헤딩 동점골, 후반 30분 이천수의 프리킥골으로 2-1 힘겨운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이 경기를 라이브로 봤었는데 선수들이 베트남의 일방적 응원과 익숙하지 않은 기후와 환경에 힘겨워해 이천수의 1골1도움 활약으로 역전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봤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아무리 '약체' 베트남이라 할지라도 상대 원정에서 경기를 해보는 것, 그리고 동남아 원정이라는 특수성을 겪어보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심지어 한국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 2차예선에서 태국, 싱가포르와 한조에 속해 동남아 원정을 두 번이나 가져야 한다. 홈에서 태국-싱가포르를 못이길 걱정을 할 팀이 아니라면 익숙지 않은 동남아 원정을 대비해 미리 해보는게 한국 축구에 훨씬 이득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월드컵 예선을 진행하다보면 홈에서 한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원정을 떠나거나 그 반대의 일이 수없이 일어난다. 자주해보지 않은 일정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선수단과 대표팀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황선홍호는 대회 3개월을 앞둔 6월 중국 원정을 치른 바 있다. 당시에는 많은 부상자와 1승1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비난이 컸지만 다녀온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은 이후 "중국의 특이한 환경과 기후, 만원 관중 앞에서 원정팀으로 경기해본 것이 정말 도움이 됐다. 금메달까지 따는데 6월 중국 원정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입모아 얘기하기도 했다.

동남아 원정을 갔더라면, 더 강한 상대를 찾아 해외 원정을 떠났다면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를 직접 보고 싶은 한국 팬들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베트남을 홈에서 이겨 행복해하는 것보다 아시안컵 우승과 북중미 월드컵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대표팀이 팬들에게 더 자랑스럽고 더 큰 행복감을 줄 것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조편성. ⓒAFC

▶많은 것을 얻었을 베트남

번외로 베트남은 이번 한국 원정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아시아 강팀인 한국과 경기하는 것 자체로도 '강한 상대'와 맞붙기에 도움이 되는데 한국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이재성 등 웬만한 해외파들을 총출동시킨 사실상의 베스트 라인업(황인범 제외)까지 가동해줬다.

경기 안에서 배우는 것은 물론 베트남 선수들은 동아시아 원정이라는 매우 특수한 환경 속에 장시간 비행과 베트남에서 겪어보기 힘들었을 1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 그리고 4만명 이상의 관중들이 자신들을 향해 야유를 퍼붓는 환경까지 모든게 큰 경험이었을 것이다. 덤으로 경기 후에는 손흥민과 인사하고 유니폼에 사인까지 받는 것까지.

베트남에게는 단 하나도 버릴게 없었을 평가전이었을 것이다. 0-6으로 패하고도 필립 트루시에 베트남 감독이 "결과가 놀랍지 않다. 베트남 선수들에게 엄청난 큰 기회이자 경험이다. 이런 경기가 미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진심이었을 것이다.

한국 홈에서 한 A매치인데 한국이 얻은건 '기분'뿐이고 베트남은 A부터 Z까지 실속이란 실속은 다 챙겼다.

누굴 위한 A매치였을까. '좋은데 안좋다'는 말도 안되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베트남전이었다.

ⓒ연합뉴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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