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임영웅 '이곳' 안 가고, OTT에 드라마 안 팔고... '○○ 패싱' 반란
① '공정성 논란' 등 특정 방송사 음악프로 패싱... 스타 보유한 기획사로 넘어간 주도권
② OTT서 못 보는 'TV 오리지널'... TV 경쟁력 확보 몸부림
③ 로맨틱 코미디 '글로벌 OTT 오리지널' 기피... '오겜' 후 'IP 독립' 각성 대중문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가수 임영웅의 신곡 활동엔 공통점이 있다. 특정 음악 방송에 출연하지 않은 '○○ 패싱(passing)'이다. 11월 솔로 앨범을 내는 정국을 마지막으로 일곱 멤버가 모두 솔로 활동에 나선 방탄소년단은 4개 주요 음악 TV프로그램 중 '쇼! 음악중심'(MBC)에만 나오지 않았고, 지난주 신곡 '두 오어 다이'를 낸 임영웅의 모습은 '뮤직뱅크'(KBS)에서만 볼 수 없었다.
BTS '음중', 임영웅 '뮤뱅'서 볼 수 없는 이유
방탄소년단과 임영웅의 특정 음악 방송 패싱은 해당 방송사 예능국과 기획사 간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하이브와 MBC의 불화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대 연말 음악쇼 출연으로 같은 날 열린 '가요대제전'에 불참한 뒤 하이브와 MBC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그 이후 뉴진스 등 하이브 계열 가수들은 '쇼! 음악중심'을 비롯해 '가요대제전'에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임영웅과 KBS와의 악연은 그가 지난해 5월 출연한 '뮤직뱅크'에서 방송점수와 시청자 선호도 점수에서 모두 0점을 받고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시작됐다. 한 시민의 고발로 '뮤직뱅크' 제작진 등이 점수 조작 혐의로 수사까지 받은 이 사안은 경찰이 무혐의로 지난 2월 수사를 종결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과 KBS 예능국 사이 앙금이 남아 이번 임영웅의 '뮤직뱅크' 출연만 성사되지 않은 것이라는 게 가요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곡이 발표된 주 목요일 '엠카운트다운'(Mnet)을 시작으로 금('뮤직뱅크), 토('쇼! 음악중심'), 일('인기가요'·SBS)로 이어지는 지상파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는 여느 인기가수들과 달리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와 임영웅이 특정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만 출연하지 않은 배경이다. 이는 대중문화 시장의 권력이 방송사 등 플랫폼에서 스타를 보유한 기획사 쪽으로 넘어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힘의 불균형과 불신으로 촉발되는 패싱의 양상은 방송가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쪽으로 확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되돌리려는 움직임으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탈(脫)OTT'로 글로벌 OTT의 시장 잠식을 견제하고 지적재산권(IP) 확보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다.
OTT선 못 보는 'TV 오리지널' 드라마 등장
신하균과 길해연 등 연기파 배우들이 여럿 출연해 기대를 산 드라마 '악인전기'는 14일 공개됐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티빙 등 OTT에선 볼 수 없다. 이 드라마를 보려면 TV를 켜야 한다. '악인전기'가 KT 산하 인터넷TV(IPTV)인 지니TV와 케이블채널 ENA에서만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KT스튜디오지니는 일부러 이 '악인전기'를 OTT에 유통하지 않았다. 이 드라마로 시청자를 붙잡아 IPTV(지니TV)와 채널(ENA)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KT스튜디오지니는 지난 8월 드라마 '신병2'를 공개하면서도 '악인전기'와 같은 방식으로 유통했다. 지난해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동 제작에 참여해 이 드라마로 당시 이름도 낯설었던 ENA에서 시청률을 20% 가까이 끌어올려 채널 이름을 알린 뒤 'OTT 패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드라마와 예능뿐 아니라 영화까지 죄다 OTT로 몰리는 상황에서 정반대로 소위 'TV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유명 해외 OTT에 넘겨 남 좋은 일 시키지 않고 직접 독점 유통해 '힘'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라면서도 "OTT를 통한 콘텐츠 시청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OTT 패싱' 전략이 반대로 콘텐츠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해외 OTT 선호도 감소... 로코로 'IP 독립 선언'
A 제작사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경우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유명 OTT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팔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IP를 확보해 수익 창구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다. A사 관계자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물은 한류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해외에서 소비층이 두텁다"며 "일본엔 유넥스트, 북미지역엔 라쿠텐비키, 동남아권은 뷰 등 권역별 OTT에 따로 팔 수 있는 유통망이 구축돼 넷플릭스에 독점 제공하는 대신 IP를 갖고 수익을 내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OTT에서 투자를 받아 드라마를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하면 제작비를 100% 보전 받지만 IP까지 다 넘겨야 하고 해외에 따로 팔 수도 없어 2차 수익을 낼 수 없다. '오징어게임'(2021)으로 '재주는 곰(제작사)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넷플릭스)이 챙긴다'는 논란이 불거진 뒤 '각성'한 제작사들이 로맨틱 코미디로 'IP 독립'을 해 직접 활로를 뚫으려는 것이다.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2022)처럼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이 국내에선 시청률 1~2%대를 오가며 주목받지 못해도 해외 OTT에선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하며 되레 밖에서 잘 팔리는 시장 환경이 형성된 게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작사들의 글로벌 OTT 견제 움직임은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낸 '2022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도 드러난다. 192개 제작사를 대상으로 외주 제작 시 우선 고려 사업자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 해외 OTT 선호도가 32.3%(교양, 드라마, 예능 포함한 전 부문 평균)로 2021년 46.8%와 비교해 14.5%포인트가 줄었다. B 제작사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땐 제작비를 보존해주면서 작지만 어느 정도의 수익까지 보장해주는 글로벌 OTT의 제안이 상당히 큰 메리트였다"며 "하지만 1, 2년 동안 IP를 플랫폼에 넘겼을 때의 부작용을 경험하며 당장 1억~2억 원 더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OTT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프로필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곳에만 팔아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 달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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