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부모 호응 적은 무료 태블릿에 헛돈, 교육교부금 낭비 현장
전국 시·도 교육청이 한 해 예산 수백억 원을 들여 학생들에게 무료로 태블릿PC·노트북 등을 나눠 주는 사업에 대한 학부모 호응이 좋지 않다고 한다.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 모든 중1 학생에게 태블릿PC를 나눠 주고 있다. 지난해 예산만 60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현재 90% 넘는 학부모 동의서를 받아 배포를 진행 중인 학교가 전체 중학교 390곳 중 10곳뿐이라고 한다. 광주시 교육청 등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학부모들은 가뜩이나 아이들의 ‘휴대전화 중독’ 문제가 심한 상황에 디지털 기기를 추가로 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은 보안 프로그램을 피해 태블릿PC등을 수업 외 콘텐츠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교육청은 2025년부터 쓰는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학부모들은 “기기가 없는 집에만 주라”며 반대 의견을 많이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는 무조건 내국세의 20.79%를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초·중·고 학생 수는 2010년 734만명에서 올해 531만명으로 감소했는데 교육교부금은 32조2900억원에서 2배 이상인 75조76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교육청들은 쏟아지는 교육 예산을 주체하지 못해 억지로 쓸 곳을 만들고 있다. 디지털 기기를 나눠 주는 것은 그 일부일 따름이다. ‘입학 준비금’ ‘학부모 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현금을 뿌리는 교육청도 허다하다.
교육 당국과 국회는 이제라도 지방교육교부금 제도를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교육청에 배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50여 년 전 교육 여건이 열악하던 시절 도입한 제도지만 지금은 세금 낭비도 이런 세금 낭비가 없다. 지방교육교부금이 1년에 14조원꼴로 불필요하게 지출됐다는 감사원 지적도 나왔다. 그러고도 사용처를 찾지 못해 지난해 기준 22조원의 현금을 기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중앙정부는 예산이 없어 나랏빚이 사상 처음 1100조원을 넘을 정도로 쩔쩔매고 있는데 지방에선 쓸 곳을 찾지 못해 헛돈을 쓰게 만드는 이런 제도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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