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신경영’ 30년… “삼성의 경험은 신흥국에 큰 교훈·학습 사례”

이정구 기자 2023.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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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기 맞아 학술대회 열려… 세계 석학들 모여 경영 철학 조명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3주기(10월 25일)를 일주일 앞둔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는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다. 그동안 삼성은 신경영 선언(1993년 6월 7일) 기념 행사를 보통 6월에 열었는데 올해는 이 선대 회장의 3주기에 맞춰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스콧 스턴 미 MIT 교수,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 등 국내외 경영 석학과 삼성 임직원 300여 명이 자리한 학술 대회로 치렀다.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행사장 입구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사진과 어록이 전시돼 있는 모습. 이 회장의 3주기를 일주일 앞두고 추모 행사로 열린 학술대회에는 국내외 석학과 삼성 임직원 300여 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날 학술 대회는 삼성을 바꾼 변곡점으로 꼽히는 신경영 선언과 이 선대 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하는 4분50초짜리 영상으로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국내 1위’라는 자만에 빠진 삼성을 자각하고, 총 68일간 5국, 8개 도시에서 임직원 1800여 명과 350여 시간의 회의와 간담회를 이어가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한 이 선대 회장의 신경영 선언 과정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후 삼성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1993년 28조원이었던 삼성전자 매출은 이 선대 회장이 별세한 2020년 약 236조원으로 8배 넘게 늘었고, 2022년에는 매출 302조원을 기록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석학들은 삼성이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전략 이론가’이자 ‘통합적 사상가’였던 이건희 선대 회장의 철학을 짚었다.

2017년 세계 1위 ‘경영 사상가’로 선정됐던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이건희 경영학,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기조 연설에서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두드러졌던 그의 경영 방식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또 “이건희 회장은 과거에 묶여 있지 않았던 경영인이었다. 과거에만 얽매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반도체, 스마트폰 등)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 간담회를 진행 중인 이건희 선대회장. /삼성전자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기념사에서 “이 선대 회장은 기업이 가진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사회가 처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며 “신경영 정신 재조명을 통해 한국 기업의 미래 준비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스콧 스턴 미 MIT 교수는 “삼성은 당초 시장에서 빠른 모방자였지만 1994년 256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혁신적인 선두 주자가 됐고, 시장에서 지배적인 입지를 점했다”면서 “이건희 회장이 남긴 이 같은 혁신의 유산은 삼성과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탄투안 베트남 풀브라이트대 교수는 “신경영 선언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을 선도하고 있던 경쟁 기업들을 따라잡고 앞서 나간 삼성의 경험은, 베트남 등 신흥국 기업들에겐 큰 교훈이자 학습 사례”라고 말했다.

‘통합적 사상가’로서의 이건희 회장의 모습도 평가됐다. 마틴 교수는 “정통적인 경영 접근 방식은 정답 지향, 합의 추구, 상충하는 대안 중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훌륭한 경영자는 ‘혹은(OR)’ 사고방식을 벗어나 해결책을 모색한다”면서 “이 선대 회장 역시 이런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의사 결정을 했다”고 강조했다.

삼성뿐 아니라 국내외 시장에 대변혁을 가져온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오늘날의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재구 한국경영학회장은 “이번 국제 학술 대회는 한국 기업의 창조적 혁신과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영원한 위기 정신, 운명을 건 투자, 신속하고 두려움 없는 실험, 실패는 학습의 일부라고 여겨야 하는 오늘날의 성공 전략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신학·인문학 분야 권위자인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삼성이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한 데 대해 “이건희 선대 회장의 기부는 단순한 재산 과시 목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국가에 환원했다”며 “한국 미술사의 영향력을 국민과 나누고자 했던 ‘르네상스인’”이라고 평가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예고 홈런’을 실현한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로저 마틴 명예교수는 “삼성이 이전에 잘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초일류’가 되겠다고 공언했고, 이후 반도체·스마트폰 등 사업에서 목표를 실제로 달성했다”고 말했다. 미래 목표를 내세운 리더들은 수없이 많지만 이를 미리 선언한 뒤 현실로 달성한 경영자는 드물다는 의미였다. 제2의 신경영에 대한 제안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 과거 대비 삼성에 대한 신세대의 전반적 관심도는 줄었다”며 “삼성이 미래 세대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2의 신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는 생전 이 선대 회장이 후원했던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함께 진행됐다. 19일에는 경기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추모 음악회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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