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병원에선 왜 쓸데없는 검사가 이리 많은 거요?”
의료진은 중년 환자와 한참 승강이를 벌였다. 셔츠 위로 기다란 흉터가 목까지 올라와 있는 남자였다. 그는 피를 토했다고 제 발로 걸어 응급실까지 왔다. 완고한 인상이었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승강이의 발단은 검사 거부였다. 권역센터까지 찾아왔지만 검사를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 의료진이 설득해도 소용없어 내가 막 불려온 참이었다. 그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여기 책임자예요? 병원 올 때마다 도움 되지 않는 검사들 나는 안 할 거요. 피 한 바가지씩 뽑아가고 방사선은 있는 대로 쬐고 결론은 없고, 검사 때문에 내 몸이 오히려 상해요. 기운이 빠져나간다고요. 솔직히 도움이 안 되잖아요.”
“네. 맞습니다. 피검사는 수치를 확인할 뿐이고 시티(CT)에선 방사선이 나옵니다. 환자분 말씀대로 직접 도움이 안 되고 치료 효과도 없습니다. 솔직히 해를 끼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순순히 긍정하자 그는 약간 놀란 듯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의 말에는 옳은 구석이 있었다. 점점 의료 현장은 수치와 영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제 응급실에서 CT는 기본 검사였다. 진단을 놓치는 경우가 줄어들었지만 단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검사는 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흉터 보세요. 어릴 때 다쳤는데 병원에서 꿰매고 이렇게 되었어요. 이것 때문에 얼마나 남들 눈치 보고 살았는데요.”
가슴과 목 상처는 나조차 흠칫할 정도로 튀어나와 있었다. 봉합한 상처가 부푸는 켈로이드 체질이었다. 옛날이라면 미리 알거나 치료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더 신경 써서 봉합했을 텐데, 까다로운 켈로이드 체질이네요.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이것도 보세요. 옛날에 병원에서 손목으로 피검사를 했어요. 엄청나게 아팠는데 피멍이 한 달을 갔어요. 그 뒤로 주사 맞은 쪽이 저려요.”
“이쪽인가요? 감각이 떨어지나요?”
내가 왼쪽 손목을 감싸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맥혈 검사는 고통스럽고 가끔 신경을 찔러요. 후유증이 남는다면 이쪽으로 신경이 먹먹해집니다. 또 환자분 말씀대로 종종 불필요한 검사예요.”
그는 할 말이 떨어졌는지 잠시 조용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피를 그만 토하게 해주세요.”
“위는 일반적인 피부처럼 피가 나면 알아서 멈출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피를 토한 게 한두 번이 아니시죠? 혹시 검은 변이 나오지는 않나요?”
“그러니까 해결해 달라고요.”
“환자분 위에 내시경을 넣어서 즉시 피를 멈추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진짜 불가능해서 그렇습니다. 저희도 무엇인지 모르면 멈추게 하는 방법도 모릅니다. 가벼운 상황이면 저희는 환자분에게 지켜보자고 말할 겁니다. 그동안 병원 때문에 힘드셨잖아요. 그런데 토혈이 안 멈추는 건 큰 문제가 있어서일 겁니다. 저희는 안타깝게도 나쁜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검사가 치료입니다. 해야 합니다.”
“... 그러면, 검사를 하겠습니다. 해주세요.”
그는 아마 고통의 한계치에서 찾아왔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쉽게 부정적 기억을 만들고 영영 보존한다. 육체의 불편까지 떠안고 살아가면서 부정적 각인은 명확해졌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엄밀히 말하면 병원의 행위는 인위적이고 고통과 불확실성이 따른다. 병원 문턱을 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커다란 신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정적 편향이 생기는 일을 영영 막을 수가 없다. 또 그것이 어떤 운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제야 검사에 응한 그에게 만성 실혈로 추정되는 빈혈이 나타났다. 수혈과 동시에 진행한 CT 검사에서 위 내부의 커다란 종괴를 발견했다. 이 종괴가 만성 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내시경에서 발견한 암은 제법 진행된 상태였다. 이미 주변 조직을 잠식하는 울퉁불퉁한 모양이었다. 당장 지혈뿐 아니라 수술도 어려운 모습이었다. 적어도 그의 병이 완치 불가능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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