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매일 무대에 서는 80대 배우들
이런 무대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합계 나이 315세, 연기 경력을 합산하면 228년.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대배우들이 12월 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함께 오른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영원한 고전인 이 연극에서, 신구(87)와 박근형(83)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를 각각 맡았다. 박정자(81)가 목줄을 맨 짐꾼 ‘러키’를, 김학철(64)이 러키를 노예처럼 부리는 지주 ‘포조’를 연기한다. 신구, 박근형, 박정자는 각각 연기를 시작한 지 60년이 넘었고 김학철도 45년 차 배우. 네 사람의 연기 경력을 더하면 총 228년이 된다고 제작사 파크컴퍼니는 밝혔다.
이 고령의 대배우들은 내년 2월 18일까지 두 달간 원 캐스트로 거의 매일 무대에 오른다. 경이롭기까지 한 열정이다.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실존하는지조차 불분명한 ‘고도’라는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방랑자의 대화로 이뤄진 연극. 인류사의 참극이었던 2차 대전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등장한 ‘부조리극’의 대명사와 같은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969년 임영웅 연출이 처음 소개한 극단 산울림의 공연이 유명하다. 약 1500회 무대에 올라 관객 22만명과 만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뮤지컬 ‘레드북’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을 연출했고 직전 ‘라스트 세션’ 공연에서 신구 배우와 함께한 중견 연출가 오경택이 맡았다.
배우들 각오도 남다르다. 신구는 “사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기억력으로도 그렇고 많이 부담스러운 작품이지만 늘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무리하자고 결심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형은 “초연 준비 중일 때 극장에 연습하러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장면을 봤고 언젠간 꼭 해보고 싶다고 쭉 생각해왔다 박근형만의 블라디미르를 보여드리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박정자는 “1969년 초연 때부터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한 번도 빠짐없이 봤다. 내가 이 작품을 함께 하는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며 “연습실에서 이렇게 긴장해 보기는 참 오랜만”이라고 했다. 김학철은 “정말 연극다운, 연극 맛이 나는 작품이다. 가족이 함께 보시면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사 파크컴퍼니 박정미 대표는 “이제 시작인데 연습이 정말 뜨겁다. 대배우들의 선의의 경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고 했다. 공연은 내년 2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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