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반쯤 익은 상태”
“한국 경제는 이제 퇴로가 없다. 세 번째 고속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2013년 ‘한국 경제가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 상황을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로 비유해 큰 주목을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맥킨지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송승헌 맥킨지코리아 대표는 지난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개구리가 반쯤 익었다”며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은 급진적이고(radical), 과감한(bold) 변화뿐”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카이스트(KAIST)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를 거쳐 2002년부터 맥킨지 컨설턴트로 근무 중이다. 다음은 송 대표와의 일문일답.
-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로 묘사됐던 한국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반쯤 익었다. 성장하지 않는 조직에선 곪은 폐해가 드러난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거의 매년 약 10%씩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순위는 1960년 39위에서 작년 13위로 뛰었고, 1인당 GDP는 79달러에서 3만2409달러로 410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수출 점유율은 88위에서 6위가 됐다. 하지만, 경제가 급랭하면서 20년 동안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 감소도 성장 정체와 경쟁 심화, 교육 비용 급증에 따라 생긴 부작용이다. 성장을 목표로 삼아야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 냄비 속 물은 100도까지 올라온 것인가?
“서서히 끓고 있다. 급속히 끓으면 당장 뭔가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뛰쳐나간다. 서서히 끓자 점진적 개선만 모색한다. 국가·기업의 지도자들은 임기 중 파국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은 모험을 꺼리고 현상 유지와 승계에만 신경 쓴다. 이익유보금만 1000조원이다. 그 돈을 재투자해 성장으로 연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투자를 해도 수익이 나오지 않으니 외국인들은 한국 시장을 외면한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칠레·콜롬비아·말레이시아 수준이다. 증시 외국인 비중도 2005년 40%대에서 최근 20% 중반으로 떨어졌다.”
- 한국 경제가 정체돼 있다는 뜻인가.
“1960~1970년대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화를, 1990년대 이후엔 아시아 외환 위기를 거치며 IT 중심 신경제로 구조 개혁했다. 경제가 두 차례 급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정체됐다. 2000년 12위였던 세계 GDP 순위는 올해 13위로 20여 년간 변화가 없다. 수출 상위 10품목 변화를 봐도, 1985년과 2005년에는 각각 20년 전과 비교해 6품목이 새로 순위에 올라왔는데 작년엔 2005년과 비교해 고작 한 품목만 바뀌었다. 그만큼 산업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첨단 산업과 강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복잡하게 얽힌 방정식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를 윽박지르기만 한다고 갑자기 잘할 순 없다. 선물로 관심을 끌고, 가정교사를 붙이는 등 환경을 개선해 줘야 한다. 한국의 문제도 인센티바이징(동기부여)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군사정권 시절이 아니므로 강제는 안 되고 재정과 제도로 접근해야 한다. 예산 집행과 감세 등 2~3가지 수단을 조합해 동기부여해야 한다. 합법적이고 건전한 방식을 찾다 보면 4~5년씩 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안온한 자세만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전면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어느 순간 빅뱅(대폭발)으로 한꺼번에, 현재보다 더 빠른 속도로 혁신해야 한다.”
- 반발이 따르지 않겠나?
“이런 의사 결정을 내리면 특정 그룹은 반발하겠지만 해야 한다. 한 예로 한국에 바이오클러스터가 18~19개 있다. 전국에 산재한 상태로는 경쟁력이 없다. 수도권에 결집시켜 미국 보스턴에 맞먹는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평등 의식과 팽배한 사회적 불신이 문제다. 만약 후보지로 인천 송도를 거론한다면 정책 결정자들이 송도에 땅을 갖고 있는지부터 의심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깨야 한다. 도망갈 퇴로는 없다.”
- 구조조정이 필요한 다른 분야는?
“정유·석유화학 분야도 그렇다. 파라자일렌이라는 석유화학 원료의 경우 2018년에는 중국이 자체 필요한 양의 40%만 생산했는데 작년에 70%로 상승했다. 조만간 100%를 넘겨 수출에 나설 것이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물량은 7~8년 뒤 현재의 10분의 1 토막 날 거다. 울산·여수·서산의 석유화학 공장의 통폐합 등 해당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조선도 현재의 호황이 지나고 난 후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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