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 스타킹·19금 댄스… 3만 관객 뒤집어 놓은 ‘불경한 열창’

윤수정 기자 2023. 10.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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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샘 스미스 5년 만의 내한

‘날 함부로 재단하려 들지 마라.’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옛 올림픽 체조경기장) 무대 위 대형 전광판을 가득 채운 영국 팝 가수 샘 스미스(31)는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망사 스타킹 차림으로 등장한 스미스는 선배 가수 마돈나의 곡 ‘Human Nature(1994년)’의 다음 가사를 부르며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요염하게 쓸어내렸다. “너 자신을 드러내, 스스로 억압하지 마.”

/AEG 프레젠트

스미스는 이곳에서 17·18일 이틀간 총 3만 관객 앞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펼쳤다. 스미스는 미국 그래미상 4관왕 출신이자, 독일 트랜스젠더 가수 킴 페트라스와 협업해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던 ‘Unholy’ 흥행으로 지난 한 해 가장 주목받는 30대 팝스타로 꼽혔다. 이번 공연 티켓도 예매 시작 1분 만에 동이 났다.

관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5년 전 첫 내한 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스미스의 무대였다. 스미스는 2017년 동성애 커밍아웃을 했고, 2019년 재차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논 바이너리)”이라고 선언했다. 공식 석상에선 스스로를 ‘남성(He)’ 아닌 ‘그 사람(They)’으로 불러달라 요구했다. 첫 내한 때는 멋들어진 슈트를 입고 팝 발라드를 애절하게 불렀지만, 최근에는 드래그퀸(연극적인 여장 남자) 분장을 하고 섹시 댄스를 추는 가수로 돌변한 것이다.

이날도 스미스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거대한 여신상 모형 무대 위로 등장했고, 자신의 변화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화장한 얼굴에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2014년 스튜디오 데뷔곡 ‘Stay With Me’로 공연 포문을 열었고, 약 2시간 동안 20곡을 쏟아냈다. 국내 방송에 자주 쓰여 한국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I’m Not The Only One(2014)’과 ‘Lay Me Down(2014), 디스코풍 댄스곡 ‘I’m Not Here To Make Friends(2023)’ 등 팔색조처럼 다양해진 음악 세계를 여러 편곡으로 선보였다. 귀에 들리는 스미스의 시원한 고음과 음색은 여전히 감미로웠지만, 총 여덟 번 갈아입은 옷이 전부 반짝거리는 드레스 혹은 섹시한 노출 의상인 점이 그의 극적인 변화를 눈으로 더욱 체감하게 했다.

이날 무대는 ‘1부 사랑(LOVE)’ ‘2부 아름다움(BEAUTY)’ ‘3부 성(SEX)’으로 나뉘었는데, 특히 마지막 무대에서 스미스의 변신은 정점을 찍었다. 사탄처럼 뿔 달린 모자를 쓰고, 반라 차림으로 창을 휘저으며 ‘Unholy’를 열창한 것이다. 이런 장면 탓에 스미스는 지난 4월 영국 공연 당시 “어린이 관객도 있는데 사탄의 무대를 펼쳤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번 내한 공연은 철저히 성인 관객만 입장시켰다.

성 정체성 커밍아웃은 대중가수에겐 사실 치명적인 스캔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스미스가 계속 흥행과 평단 호평을 이어가는 건 그가 어떤 성별로 변신하더라도 뛰어난 음악적 재능만큼은 변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현실의 벽은 높고 두꺼워서 이날 공연장을 나서던 관객들의 반응은 침음성과 환호성으로 양분됐다. 보는 이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일탈이 스스로에게는 아름다운 자유라면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스미스가 공연 중 남긴 다음 말이 그 스스로가 찾은 해답처럼 들렸다. “오늘 밤 여러분이 가져가길 원하는 건 자유예요. 일어나든, 춤을 추든, 노래를 따라 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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