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거대한 체스판과 연결된 위기
이스라엘-하마스 戰은 전조, 한반도 등 전 세계 위험 신호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단체인 ‘하마스’가 자신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마을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살해되었고 많은 이가 인질로 잡혀 가자지구에 억류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피의 보복을 선언하고 역시 가자지구에 전방위 폭격을 가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살해되는 등 가자지구 주민 희생자가 급증하고 있다.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중동 전체로 확대될 조짐이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투입해 아예 가자지구를 점령할 기세이고 하마스는 물론이고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반격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하마스의 후견인을 자처해 온 이란 역시 참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눈앞에 두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아랍의 맹주로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될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전쟁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다. 지난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국면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세계의 화약고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는 느낌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외교 브레인으로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에 쓴 자신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목표로서 미국의 세계 패권 지위 지속 여부를 결정할 거대한 체스판이라고 규정했다. 브레진스키는 2012년에 쓴 또 다른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2025년까지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정학적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취약한 국가 및 지역들을 열거한 바 있다. 조지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중동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대만 그리고 한국이 그렇게 꼽힌 나라들이다.
오늘날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 2010년 중국 경제의 세계 2위 달성 등으로 중국의 부상이 가속화되자 미국은 2011년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선언을 통해 중국을 견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 비전을 선언했다. 2013년 중국 당국이 제시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구상은 미국 주도의 지정학 전략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다. 중국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이란 인도 등 유라시아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세력권인 태평양 연해에서 미국과 경쟁하기보다는 아예 지정학의 중심을 유라시아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와해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글로벌 지역주의의 추세에 따라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건설하고, 중국 주도의 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해 왔다.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중러 관계가 고도의 전략적 진화 단계로 격상되었고 이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주도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라시아를 연결하는데 공통의 이해를 갖게 되었다. 러시아는 나토(NATO)가 중심이 되어 조직되는 새로운 유럽에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하고 중국과의 협력 강화로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동맹 체제 강화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분할 관리하는 방식으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미국은 아시아에서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채택하고 아시아 내 동맹체제 강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공화국에 대한 나토 회원국 확대를 도모해 왔다.
이처럼 기존 세계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 그리고 이에 도전하는 신흥 세력이 뒤엉키다 보면 거대한 체스판인 유라시아 대륙에서 다양한 전쟁 위기가 연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치러지고 있고 중동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것을 그 전조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아시아에서는 대만해협 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다. 한반도 역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고조되어 온 북핵 위기가 이제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사회학자 백승욱은 그의 신간 ‘연결된 위기’에서 이러한 위기들이 연결되면 세계가 얄타체제 이전, 즉 세계대전의 카오스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원치 않겠지만,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는 섬뜩한 미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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