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03] ‘마라손 제패가’의 주역들
최근에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 우승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영화는 미온적 태도를 보인 미 군정청 때문에 미국 보스턴에 가기까지 갖은 고생을 하는 장면들과 운동복에 성조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래서 달리기 장면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관람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당당하게 태극기를 가슴에 단 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일등을 차지한 주인공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상한 손기정과 남승룡이 합심한 결과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광복 이후 남북 분단의 우려와 불안이 팽배했던 우리 사회에 한 줄기 단비와 같은 기쁨이었다. 1947년 4월 22일 ‘동아일보’에 “마라손 제패가(制霸歌)를 일금 만원으로 공모”한다는 기사가 실린 것은 대회를 마친 후 불과 3일 만의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감격과 흥분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5월 20일까지 노랫말을 공모한 결과 전국에서 응모한 작품이 170편에 이르렀으나 적합한 작품이 없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설의식이 직접 ‘마라손 제패가’를 작사했다. “이 나라 아들의 줄기찬 얼과 힘 세계를 흔들어 날리는 태극기”로 시작하는 노랫말에 이유선이 곡을 붙인 ‘마라손 제패가’는 1947년 8월에 음반 취입까지 예고되었으나 그 음반이 실제로 발매되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 없다.
손기정이 금메달을 수상했던 1936년에도 이를 기념하는 노래가 제작되었다. 이고범이 작사하고 이기영이 작곡해서 ‘리라’가 노래한 ‘마라손 왕’이 태평레코드에서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콜럼비아레코드에서도 기념 음반을 발매했는데, 앞면에는 ‘우승의 감격’이란 제목으로 손기정의 연설이, 뒷면에는 채규엽이 노래한 ‘마라손 제패가’가 각각 수록되어 있다. “반도가 낳은 마라손의 두 용사 우승 빛나는. 즐거웁다 이날이여”로 시작하는 ‘마라손 제패가’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결국 마라톤을 그만둔 손기정의 울분을 1947년에 서윤복이 풀어준 셈이니, 집념과 끈기로 그들이 지켜낸 태극기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3위를 차지했고 10월 15일은 체육의 날이었다. 10월 13일에 시작된 제104회 전국체전은 19일에 막을 내린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휘날려준 아시안게임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국체전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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