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통계 조작 때 기자들이 겪은 일

박종세 논설위원 2023. 10.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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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납득할 수 없었던
文 정부 시절 부동산 통계
통계 조작 밝혀지니 이해돼
새빨간 거짓말 드러난 게 다행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게이트 당사자' 피켓을 들고 질의를 하고 있다./뉴시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기자들은 숙명적으로 거짓말을 듣는다. 취재원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팩트를 가려내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정부 부처가 그럴듯한 근거로 둘러대면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가 그랬다. 같은 집값인데 민간 KB 통계를 보면 시장이 펄펄 끓었고, 정부 공식 채널인 한국부동산원 통계는 미지근했다. 이유를 물으면, 부동산원은 전문 조사자가 실거래가 중심의 ‘거래 가능 가격’을 산출하고, KB부동산은 공인 중개사가 호가를 입력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여기에 부동산원은 기하평균(제본스지수), KB부동산은 산술평균(칼리지수)을 활용한다고 기술적인 얘기까지 보태면 미궁에 빠졌다. 미심쩍었지만 설마 통계까지 조작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 청와대와 국토부의 압력으로 부동산원은 이미 조사한 상승률을 인위적으로 낮추고, 나중에는 아예 표본 조사도 하지 않고 임의로 숫자를 넣었다. 고도의 통계 기법 차이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통계를 조작했을 뿐이다.

집값을 놓고 다툰 시민 단체 경실련과 문재인 청와대 관계도 미스터리였다. 2021년 6월 문 정부가 지난 4년간 집값이 17% 올랐다고 발표하자, 경실련은 시세 기준 79% 상승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더는 국민을 속이지 말고 지금 당장 깜깜이 통계, 조작 왜곡 통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진보 진영 시민 단체라고 하더라도 이런 불경한 주장에는 펄펄 뛰어야 했을 청와대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 미스터리도 감사원 조사에서 풀렸다. 이보다 1년 전, 경실련은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지난 3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이 11%”라고 하자, 이를 반박하며 김 장관 교체를 요구했다.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는 말입니다”라고 국토부 관료를 질책했다. 이 관료가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반박 시 공격받을 수 있다”고 하자, 김 실장은 “그렇게 소극적으로 합니까”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1년 뒤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지만, 김 실장은 자신의 부동산 문제로 경질된 뒤였다. 명분도, 악역을 담당할 인물도 청와대엔 남아 있지 않았다.

2021년 7월엔 부동산원이 아파트 값 표본 통계를 두 배(3만5000건)로 늘리자 수도권 아파트 시세가 순식간에 약 20% 올랐다. 샘플을 늘렸다고 해서 지난 1년간 오른 집값의 4배가 불과 한 달 만에 상승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부동산원은 ‘표본 가격 현실화’ ‘표본 재설계’라고 했다. 말장난일 뿐이었다. 지속적으로 통계를 조작하다보니 현실과 너무 괴리가 커져 어쩔 수 없이 한꺼번에 털어내는 작업을 이때 한 것이다. 그동안 실무자들이 부동산 통계를 조작하느라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문 정부에서 ‘소득 주도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분배 악화 통계가 나온 뒤 황수경 통계청장은 경질됐는데, 이임식 내내 울었다. 짐작은 갔으나 내밀한 사연은 취재되지 않았다. 감사원 조사 결과,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통계청 공무원을 청와대로 불러 밤새 통계 조작을 시도했고, 이 자리엔 후임 청장이 된 대학 후배가 함께 있었다. 일부 통계청 직원은 황 청장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거래했다.

역대 정부도 조금씩 통계 마사지를 했지만, 문 정부처럼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진 않았다. 경제를 담당하는 정권 수뇌부가 대거 개입하고, 스스로 개정한 통계법을 어겨가며 조작한 사례도 전례가 없다. 이런 새빨간 거짓말이 이제라도 드러난 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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