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30일 이사회 결정에 달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의 최대 분기점이 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30일 열린다. 앞서 EU 경쟁 당국은 “양사 합병으로 유럽 화물·여객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 사업을 매각하고 일부 노선을 국내 LCC(저비용 항공사)에 넘기는 시정 조치안을 이달 말까지 EU에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화물 사업 매각은 아시아나 이사회 승인 사항이다.
대한항공은 현재 14국 중 11국 승인을 받고, EU·미국·일본만을 남겨둔 상태다. 일본 승인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EU와 미국은 부정적 태도를 보여 합병이 좌초될 위기다. 만약 아시아나 이사회가 화물 사업 매각을 거절해 합병이 무산되면 3조원 이상 공적 자금이 투입된 아시아나항공의 앞날이 미궁에 빠질 우려가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달 말 내로 이사회를 거쳐 시정 조치안을 마련해 EU에 제출할 것”이라며 “만약 이사회에서 부결될 경우, 합병이 물 건너 갈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의 핵심 쟁점은 3가지다. 합병 과정에 해외의 독과점 이슈 제기를 피하면서 국익 손실 최소화가 가능한가, 아시아나항공의 독자 생존 및 제3자 매각이 가능한가, 합병 이후 대한항공의 국내 독과점 문제는 없는가다.
◇해외 우려 해소하면서 국익 손실 최소화 가능한가
대한항공이 합병을 위해 해외 노선의 일부 ‘슬롯’(slot·운항 시간대)을 반납하기로 하면서 국익 손실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앞서 영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양사가 보유한 인천-히스로 슬롯 17개 중 7개를 영국 버진 애틀랜틱에 양도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국에는 독과점 우려가 있는 총 9개 노선에서 일부 슬롯을 타사가 원하면 반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여기에 대한항공이 EU와 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아시아나 매출 비율 21%인 화물 사업과 유럽·미주 노선을 국내 LCC에 넘기려고 하자 “차 떼고 포 떼면 시너지가 나겠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대한항공은 화물 및 유럽·미주 노선의 경우 해외가 아닌 국내 기업에 넘길 계획이라 국부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양사가 보유한 1500개 이상 해외 슬롯 중 타국에 반납하는 것은 영국·중국의 10여 개(1% 미만)로 극히 일부라고 반박한다.
◇제3자 매각: 아시아나의 자생력이 관건
합병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독자 생존할 수 있을지도 논란이다. 올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의 총부채는 12조원에 달한다. 이자로만 연 4000억원이 나간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에는 2014억원 영업이익을 내고도, 602억원 순손실을 냈다. 채무 탕감이나 구조 조정, 급격한 실적 개선 없이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1988년 창립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5년 중 당기순이익을 낸 적이 15년에 불과하다. 최근 10년 중에는 항공업 호황이 왔던 2016~2017년이 있었고, 2022년에는 코로나로 화물 운임이 상승해 순수익을 달성했다.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와 2008년 대한통운 인수 참여 등으로 적자와 빚이 누적돼온 것이다. 특히 2014~2016년 초대형 비행기 ‘A380′ 6대를 도입한 이후엔 고비용 구조가 더 악화됐다. 대당 약 4억달러(약 5000억원)에 달하는 비행기를 할부로 구매했는데, 495석에 달하는 좌석을 다 채우지 못하고 뜨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단거리 노선은 LCC에, 장거리 노선은 대한항공에 밀리면서 아시아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분석이 증권가에 많다.
현금도 말라가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 현금 유동성은 9600억원이었는데, 지난 7월 산은·수은 단기 대출 7000억원을 갚으면서 남은 유동성은 3000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당장 21일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대출 24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기안기금은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에서 빌려준 돈으로 만기 연장이 불가능하다. 이 돈까지 갚으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또 이달 30일 산은·수은의 특별 약정 지원인 1조8000억원 만기 등 줄줄이 대출 만기 도래가 이어진다. 합병이 불발될 경우 대출 연장도 불투명해 채무 불이행(디폴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각에선 아시아나가 최근 항공 업황 회복으로 영업이익을 내는 만큼, ‘제3자 매각’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경우 산은의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산은·수은은 아시아나항공에 3조3000억원을 빌려줬고, 중도 상환금을 빼면 2조4200억원 대출이 남아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HDC현산에 매각 진행 당시 2조원이던 몸값이 대한항공으로 넘어오며 1조8000억원으로 떨어졌는데, 이번에도 유찰되면 헐값이 될 수 있다”면서 “12조원 부채를 가진 아시아나를 매각하려면 강도 높은 구조 조정과 함께 채무 탕감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항공 산업: 독과점 논란 있어
일각에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합병하면 대한항공 독과점이 강화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LCC들이 장악한 단거리 노선은 괜찮지만, 미주·유럽·호주 등 장거리 노선에서 대한항공 점유율이 높아져 항공 요금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적기 선호도가 높은 국민 입장에선 선택지가 없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합병하면 아시아나 등 26사가 가입한 세계 최대 항공 동맹인 스타 얼라이언스에서 탈퇴해야 한다.
반면, 합병으로 대한항공이 글로벌 10위권 ‘메가 캐리어’가 되면, 소비자 편익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 양사가 불필요한 경쟁으로 중복 운항했던 취항지를 효율화하면, 다양한 소도시까지 취항지를 넓힐 수 있고 요금도 오히려 인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서울-뉴욕 아침 비행기를 각각 오전 10시, 9시 50분에 운항 중이다. 이걸 대형기 하나로 합치고, 남은 비행기를 피츠버그 같은 소도시로 돌릴 수 있다.
실제 독일·프랑스·영국 등은 1개 대표 항공사가 비행기 300대 이상을 보유하며 자국 거점 공항 슬롯을 과반 점유하고, 타국 공항에도 영향력을 발휘해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한국은 156대를 보유한 대한항공이 글로벌 24위 수준에 그쳐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부족하다. 요금 인상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국토부가 정하는 항공 운임 한도가 있는데다, 공정위가 합병 후 10년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소속된 스카이팀은 에어프랑스·KLM 등 19사가 소속된 좋은 동맹으로, 제휴 항공사 이용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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