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폭격에 “이스라엘의 학살” vs “테러단체 소행”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3. 10. 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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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가자병원 학살에 보복할 것”
이스라엘 “팔 무장단체 지하드 소행”
바이든, 이스라엘 찾아 연대 표명
요르단-이집트, 바이든과 회담 취소
1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거점인 가자시티의 알아흘리아랍병원이 공습을 받아 민간인 다수가 희생된 가운데, 한 여성이 공습에 따른 폭발 사고로 다친 아이를 끌어안은 채 울먹이고 있다. 이 공습에 대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협력하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의 오폭이라고 반박했다. 가자시티=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직전인 17일(현지 시간) 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한 병원이 공습을 받아 수백 명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이라고 규탄했고, 이스라엘은 “(또 다른 무장단체)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의 소행”이라고 맞서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이스라엘에 도착해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병원 공습을 계기로 미국과 이스라엘 대 아랍 국가로 선명하게 선이 그어지며 중동전쟁이 한층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밤 가자시티의 알아흘리아랍병원에 가해진 로켓포 폭격으로 환자, 난민 등 5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도 최소 수백 명이고 이와 별도로 상당수의 시민이 건물 잔해 밑에 깔려 있다고 했다. 다만 미 CNN 등 외신에서 폭발 원인이나 사상자 규모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이번 공습을 유례없는 대량학살로 규정하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보복을 천명했다.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내일(18일)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삼자. 거리와 광장으로 즉시 가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중동 이슬람권에 촉구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번 폭격이 하마스보다 더 강경한 반이스라엘 성향인 PIJ의 로켓 발사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병원을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군이 아닌 야만적 테러범들”이라며 PIJ 소행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스라엘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18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에서 “폭발 사건에 대해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본 바로는 그것은 당신(이스라엘 측)이 아닌 다른 쪽이 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후 연설에서 이 폭격을 ‘테러단체’ 소행이라고 말했다.

이 여파로 당초 이날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중동전쟁의 해법을 논의하려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反)이스라엘·반미 시위 또한 확산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이스라엘의 하마스 제거는 지지하지만 가자지구 점령에는 반대한다며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이례적으로 빠르게 타국 전장을 찾아 직접 해법을 도출하려 했다. 하지만 대형 참사와 주변 아랍 3국과의 회담 취소로 첫발부터 어그러진 모양새일 뿐만 아니라 중동전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1981년 결성된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자살폭탄 테러와 민간인 공격을 감행하는 등 하마스보다 세력은 약하지만 더 강경한 성향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서방에서 테러단체로 지정됐다.

하마스 “이 공습에 500명 숨져”… 이 “지하드 오폭” 감청파일 제시

[중동전쟁]
가자 병원 공격 누가… 책임 공방
이 “공습 때 생기는 웅덩이 없어”
지하드 “이, 과거에도 병원 공습”

이스라엘 도착한 바이든, 네타냐후 포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8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포옹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비상 전시 내각 각료들을 만나 하마스 대응과 가자지구 봉쇄 완화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텔아비브=AP 뉴시스
“수술 중 강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수술실 천장이 무너졌다.”

17일(현지 시간) 공습으로 수백 명이 숨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아랍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영국 스카이뉴스에 전한 당시 참상이다. 그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병원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됐다며 “이건 학살”이라고 규탄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폭발 직후 촬영된 몇몇 영상에는 불길이 병원 일부를 집어삼키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달려가는 의료진 등 당시의 참혹한 모습이 생생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18일 이스라엘에 도착해 확전을 억제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구상은 좌초 위기에 처했다. 공격 주체의 진위와 관계없이 지상군 투입을 예고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국과 가까운 아랍국인 요르단, 이집트 등도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하며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뚜렷하다.

● 하마스-이스라엘 책임 공방

가자지구 내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의 중심부에 있는 알아흘리아랍병원은 1882년 설립된 141년 역사의 유서 깊은 병원이다. 이 병원은 7일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군이 대피를 통보했던 가자지구 북부 병원 20곳 중 하나다. 하지만 남부로의 피란이 여의치 않았던 상당수 주민이 병원만은 안전할 것으로 믿고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공습에 따른 인명 피해가 커졌다.

이 사건이 누구 소행인지를 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공방을 벌였다.

하마스는 병원 공습 직후 “이스라엘 폭격으로 어린이, 여성을 비롯해 최소 민간인 50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은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의 오폭”이라면서 영상과 사진, 음성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사망자 수도 하마스가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8일 기자회견에서 “공습으로 인한 (주차장) 주변 건물 훼손도 없고, 우리 무기로 공습할 때 일반적으로 생기는 거대한 웅덩이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미사일 공습 현장에 생긴 각각 지름 7m, 9m짜리 웅덩이 사진을 공개했다.

이번 공격이 PIJ 측 오폭임을 인정하는 듯한 하마스 대원들 대화를 감청한 녹음 파일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스라엘군이 영어로 번역해 함께 게시한 대화 자막에 따르면 하마스 한 대원이 “우리가 쏜 거야?”라고 묻자 다른 대원이 “(병원에 떨어진) 미사일 파편은 PIJ 것이래, 이스라엘 것이 아니고”라면서 “병원 뒤쪽 묘지에서 쐈다”고 말했다.

반면 PIJ는 “이스라엘이 병원에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전에도 이곳을 공습했다”면서 (미사일이) 떨어진 각도나 파괴력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 이스라엘行 바이든, ‘확전 방지 구상’ 위기

로켓포 공격당한 가자 병원 1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거점인 가자시티의 알아흘리아랍병원이 공습을 받아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끔찍한 학살”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이슬라믹지하드(하마스와 협력하는 무장단체)의 오폭”이라고 반박했다. 가자시티=게티이미지코리아
18일 이스라엘 도착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가자지구 병원 폭격에 대해 “당신(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팀(the other team)의 소행처럼 보인다”면서 “그러나 (이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우리는 많은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하마스의 공격 및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선 “잔인하고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라면서 “이스라엘은 혼자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방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도록 미국이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당신은 미 대통령이 전쟁 중 이스라엘을 방문한 첫 번째 사례”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중 교전 중인 다른 나라를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바이든 대통령이 타국 전장에 뛰어드는 위험을 무릅썼지만 돌출 참사로 인해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중동 국가들마저 거리를 두며 사태 해결은 더 어려워졌다. 이번 참사로 같은 날 요르단 암만에서 만나기로 했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전격 취소했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을 설득해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을 이끌어내며 이란과 헤즈볼라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중동 전체를 향해 메시지를 내려 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이 완전히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이 미국의 중동 개입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간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위해 인도태평양에 치중했던 미국의 정책이 이번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만큼 다시 중동 관여가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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