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전쟁? 뭣이 중헌디?

혜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사회국장 2023. 10. 1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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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조계종 조계사 사회국장) △

해외여행을 수백 차례 다녀온 지인이 해준 말이 있다. "어딜 가나 다 사람 사는 곳이더라"는 말이다.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어느 곳인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겠나. 사람이 있으니 전쟁도 일어난다. 문제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담긴 내용이다. 누군가는 이념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종교를 말한다. 혹은 영토, 자원, 민족문제 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석하거나 포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무엇인가. 층간소음을 일으키던 윗집 아이도, 주차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이웃집 아저씨도, 퉁명스러운 편의점 직원도, 흠모하던 사무실의 옆자리 동료도, 부모형제 구분 없이 포탄과 총알이 날아온다. 물론 나 자신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죽었다가 부활하지만 나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부활하지 못한다. 무엇이 전쟁인가. 전쟁은 참혹한 죽음이다. 종교를 핑계 대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늘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짧게 잡아도 5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대국가부터 지금까지 전쟁을 끊임없이 해왔다. 우리가 다 기억도 못할 그 많은 전쟁과 자잘한 전투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이 좁은 한반도에서만 전쟁 속에 죽은 사람이 수천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50은 넘은 지도자들이다. 반면 총을 들고 죽음으로 뛰어드는 이는 20대 청춘들이다. 그렇다고 전쟁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사바세계는 그렇게 생겨 먹었다.

진화의 자연선택설 입장에서 보면 종을 보전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놈 저놈 많이 준비해야 된다. 자연이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는 야생과 자연이라는 힘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해당하는 말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부족하나마 천재지변이나 세균, 맹수들을 이겨낼 역량을 갖췄다. 다양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종을 지켜나갈 방법은 많을 것이다. 다양성이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 종교, 관습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문제가 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는가. 종의 보전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그 다양성이 종 스스로를 해치고 있다. 그렇다고 획일화한 인류가 된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다. 다만 다양성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종교가 다른 게 무슨 그리 큰 문제인가. 피부색으로 귀천을 따지는 게 얼마나 어린애보다 못한 생각인가. 인류는 좀 철이 들어야 한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 탐사선이 명왕성 부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 모든 영웅과 비겁자가,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 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다."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대장놀이에 정신 팔린 어리석은 지도자들과 그 뒤를 따를 철없는 인간들을 위해 우리는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라는 옛 성인의 마음이 지금 순간에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든 이의 마음에도 꽃피우길 간절히 기도한다.

혜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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