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짜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

2023. 10. 1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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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탤런트 겸 가수인 신신애 씨가 1993년 막춤을 섞어 히트시킨 노래 가사의 일부다.

'짜가'는 물론 가짜를 말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바로 노랫말 속 가짜가 판치는 요지경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가짜가 정부의 통계로 둔갑해 인플루언서의 페이스북을 거쳐 신문의 활자나 방송국 아나운서의 입을 타고 세상으로 퍼져나가면 진짜와 구분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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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포장된 유력인사 거짓말
탈원전 가짜 선동 등 꼭 사과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탤런트 겸 가수인 신신애 씨가 1993년 막춤을 섞어 히트시킨 노래 가사의 일부다. ‘짜가’는 물론 가짜를 말한다. 거짓과 속임수로 ‘짜가’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바로 노랫말 속 가짜가 판치는 요지경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가짜 뉴스 논란이 계속된다. 가짜를 감별해내는 사회 메커니즘은 고장난 지 오래다. 물론 일부지만, 정부는 통계를 조작해 정책 실패를 감추기 급급하고, 언론은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만 있으면 사실 확인을 생략한 거짓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 법은 진실을 요리조리 감추기 위한 ‘법꾸라지’의 도구로 전락했고, 지식인들은 검증되지 않은 조잡한 가설을 동원해 거짓을 옹호하며, 종교인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우상에 편승해 거짓을 부채질한다. 거짓말을 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너도 했고 나도 했으니 서로 ‘퉁’치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다. 장삼이사 간 사소한 거짓말은 상호 간 양해를 통해 퉁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유력 인사들의 거짓말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의 거짓말은 타인의 삶에 상처를 내고, 학문을 오염시키고, 가치관을 왜곡하는 등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어 어지간해서는 구분해 내기도 어렵다. 가짜가 정부의 통계로 둔갑해 인플루언서의 페이스북을 거쳐 신문의 활자나 방송국 아나운서의 입을 타고 세상으로 퍼져나가면 진짜와 구분이 어려워진다. 마치 짝퉁이 시전 좌판에서 뒹굴면 금방 가짜임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번듯한 매장에 진품과 함께 버젓이 걸려 있으면 전문가들도 현혹되기 십상인 것과 같다.

물론 지식과 정보, 분석력, 판단력 등이 부족해 본의와 달리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내뱉은 거짓말이 면책되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정정과 진솔한 사과가 뒤따라야 거짓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에는 거짓이 홍수를 이루는데, 사과는 완전 가뭄이다. 거짓이 오히려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다. 잊을 만하면 거짓말 소동을 벌이는 국회의원이 살아있는 물증이다.

예를 들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북태평양에서 잡힌 고등어 명태 대구를 300년간 먹지 말라고 했던 의대 교수, 최근 일본의 오염처리수 방류를 핵폐수라고 칭하며 독극물 취급하던 정당 대표, 원전 주변 갑상샘암 발병률이 높다며 탈원전에 앞장서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국회의원이 사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한다. 정식 사과 없이 넘어가면, 신규 원전뿐 아니라 방폐장 추진 시 이들은 또다시 가짜 선동에 부담 없이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원전 없는 탄소중립은 현실적으로 허구다. 따라서 원전 관련 가짜 선동에 대한 사과는 탄소중립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상식과 무가치가 뒤섞여 진실과 정의를 구분해낼 수 없는 혼란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기본 상식은 공적 감시를 받는 유력 인사 앞에서 비틀거리고, 거짓을 단죄해야 할 사법 체계는 법기술자들의 괴변 같은 논리로 되치기당해 오히려 거짓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신신애의 노래는 거짓과 위선을 걷어낸 민낯과 같은 진실의 세상을 바라며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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