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구산동도서관마을과 남산도서관
1999년 구산동 한 초등학교의 2학년 8반 어머니 7명이 모여 유쾌한 반란을 꿈꿨다. 그들의 가정집을 도서실로 꾸미고 주부들이 운영하면서 마을 아이들이 쉽고 친근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뜻을 함께한 여러 주민과 동사무소, 구청의 도움을 받아 이 민간 도서실은 주민자치센터 내 작은 꿈나무도서실로, 파출소 건물로 점차 확장해나갔다.
주택들 엮어 지은 구산동도서관마을
건물을 새로 지으며 모든 일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플로 건축사무소의 최재원 건축사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이 갖는 탄생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간다는 생각으로 리모델링을 지원했다. 기존의 주택건물 중 노후도가 심한 건물 네 동은 허물고, 나머지 네 동은 새로운 건물과 엮이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로비 같은 공간 맞은편에 주택의 외벽 면이 성큼 다가온다. 신비한 체험이다. 벽돌 벽은 건물의 바깥 면으로만 인식하는 우리에게 건물의 내부 벽면으로 보여줌으로써 신기함을 안겨주고, 과거 주택의 친근함을 더 잘 느끼도록 해준다.
3층의 작은 다가구 주택을 도서관이라는 대형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건축가는 기존 주택의 각 부위를 일일이 줄자로 쟀다. 그러고는 헐어낼 부분과 이용할 부분을 정리하고, 치수에 맞춰 공간을 재미있게 엮어냈다. 기존 주택은 벽돌을 이용한 벽식구조이기 때문에 벽을 헐면 건물의 구조적 안전에 위협이 된다. 가능하면 기존 주택의 벽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택의 방 크기만 한 공간이 많아져 도서관 공간이 협소해 보일 수 있는데, 그는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구성된 열람실이 아니라 작은 독서 코너 방 여러 개를 가진 도서관으로 구상했다. 그럼으로써 과거 주택 도서관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구산동도서관마을만의 독특한 ‘가정집 분위기 도서관’을 연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남산도서관은 도서관이 부족하던 시절, 서울 각지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며 이용한 국내 최대 규모 도서관이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에 하루종일 앉아 교과서와 참고서적을 읽고 외우던 따분한 곳이었지만, 남산이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젊은 날의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구산동도서관마을과 비교할 때 남산도서관은 리모델링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자치의 뿌리라는 의미를 리모델링을 통해 되살리고자 했지만, 남산도서관은 노후화한 시설을 개선하고 일부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는 등 일반적인 리모델링이었다. 물론 이곳저곳 재미있는 공간이 생겨났고 리모델링 결과에 대해 많은 격려의 글도 달렸다.
그러나 남산이라는 의미는 곧 서울의 중심이다. 전망 좋은 자연이라는 이점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대부분은 예산 때문이겠지만, 100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온 장소라는 점, 또 남산이라는 환경적 가치까지 고려했다면 좋았을 텐데 보통의 도서관과 같은 내부 공간으로 구성한 것은 아쉽기 그지없다.
요즘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 꼭 공부하러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시험공부 하듯이 칸칸이 나뉘어 있는 옛날 독서실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책을 벗 삼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휴식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책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목적은 사라졌고, 오히려 책의 전경을 통해 또 도서관의 실내 공간 분위기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박물관 같은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과감한 변화 없어 아쉬운 남산도서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도서관의 모범을 보여주고, 점점 카페에 빼앗기고 있는 도서관 방랑자들을 생각한다면 남산도서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공공에서 더 좋은 종합환경을 만들어줄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처럼 도서관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거나 남산이라는 서울의 엄청난 자원을 유용하게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국제현상설계라도 해서 남산도서관을 멀리 가지 않아도 산과 숲을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서울 시민의 중심 공간으로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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