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그림 밑 ‘101 프루프’...이 위스키 대체 몇 도야?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위스키디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7
사진 속 야생 칠면조가 그려진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몇 도일까요? 자세히 보면 도수가 표시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 101이라는 숫자와 프루프(Proof)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해당 위스키의 도수는 101도일까요? 지금부터 프루프의 정체를 밝혀드리겠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 해군들의 음주 생활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16세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다니던 해군들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식수 부족이었습니다. 식수 대부분은 런던의 템스강처럼 오염된 수원지에서 길어왔기 때문에 출항과 동시에 물을 담은 나무통에서 악취가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 함대 지휘관인 에드워드 버넌(Edward Vernon)은 선원들에게 오염된 물 대신 럼주를 배급합니다. 이때 장교들에게는 순도 높은 럼주를 제공했지만, 일반 병사들에게는 럼에 물을 섞은 그로그(Grog)를 공급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비타민 C 부족으로 다수의 선원이 앓았던 괴혈병 치료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한 술 먹고 선상에서 말썽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로그는 럼주와 물을 1대4의 비율로 섞은 후 라임과 흑색 설탕으로 풍미를 더한 일종의 칵테일입니다. 모든 술이 그렇듯 그로그도 과하면 취하게 되는데, 격투기에서 정신 잃고 쓰러질 것 같은 상태인 ‘그로기’가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문제는 높은 도수의 독주에 익숙해진 선원들에게 물 탄 술이 인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로그는 그로그대로 마시고, 매일 할당되는 럼은 따로 아꼈다가 한꺼번에 마시는 ‘독주’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한편에선 일부 중간 도매상들이 럼주에 물을 타서 양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원들 입장에서 술에 장난치는 이런 행위가 용서가 안 됐겠죠. 귀한 럼주가 진짠지 가짠지 확인이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고안된 것이 화약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해군 함정에는 늘 화약이 갖춰져 있습니다. 간혹 술에 취해 화약고 인근에서 술 마시다 럼에 불이 붙는 위기 상황도 겪었을 겁니다. 선원들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화약이 점화되는 최소한의 알코올 농도를 100프루프(당시, 57.1도)로 간주하고 술에 불을 붙여 보는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럼주에 화약 알갱이를 넣고 불을 붙여, 불이 붙으면 멀쩡한 술이라는 증거(proof)이고, 안 붙으면 언더프루프(underproof), 즉 물을 탔다는 방증이 됩니다. 여기서 아예 ‘펑’ 하고 터지면 오버프루프(overproof)에 해당하는데 이는 현장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였을 겁니다.
위스키 라벨에 쓰여 있는 ‘프루프’라는 것은, 선원들의 의심에서 시작돼 ‘알코올 도수를 보증한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위스키 도수는 일반적으로 ABV(alcohol by volume)나 알코올 용량으로 표기돼 있는데, 프루프는 도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단위이자 옛 전통의 흔적인 셈입니다.
16세기 영국에서 주세 징수 목적으로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는데 ‘타거나 안 타거나’를 기준 삼았습니다. 불이 붙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그에 맞는 비율로 세금을 부과한 것이지요. 하지만 화약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며 누가 봐도 썩 과학적인 느낌은 안 났을 겁니다. 또 알코올은 주변 환경이나 온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정확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실제로 순수 알코올(200프루프 알코올)은 공기 중에 노출되는 순간, 대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 자체적으로 약 194프루프까지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화약을 사용해 도수를 측정하는 방법은 1816년부터 비중 기반 계산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 발명된 비중계로 100Proof를 환산한 알코올 농도가 57.1%였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계산법 때문에 국제적인 미터법이 제정되고 퍼센트 단위의 알코올 농도 표시법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프루프를 ‘부피에 따른 알코올 도수(alcohol by volume)’의 두 배로 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ABV가 50%인 위스키는 100프루프를 의미합니다. 즉, 프루프를 반으로 나누면 알코올 도수인 셈입니다. 현재는 정상적인 백분율 도수를 사용하지만, 간혹 프루프를 표기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위스키 라벨을 확인할 때 숙성 연도 다음으로 보는 게 알코올 도수일 겁니다. 설명이 장황했지만, 여러분은 프루프를 반으로 나누면 알코올 도수가 된다는 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각종 독주 라벨에 100프루프라고 적혀 있다고 알코올 도수가 100도가 아닙니다. 딱 그 절반입니다.
위스키디아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