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은 사과[서광원의 자연과 삶]〈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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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훅 던져주고 가는 경향이 있다.
일반 사과보다 10배나 비싼, 개당 만 원이었다.
세상에, 맛있는 사과까지 먹으며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 뭘 못 하겠는가.
이들은 당장의 안전을 확보할 순 있지만, 공력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지는 단단한 외피 속의 삶 대신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적합한 삶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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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낙과 사태에도 낙담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떨어진 사과가 아니라 여전히 달려 있는 10%의 사과를 봤다. 이들 사과에 있는 그대로의 이름, 그러니까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부모들에게 이 사과를 홍보했다. 두 번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이 강한 기운을 받아 가라고 말이다. 싼 것도 아니었다. 일반 사과보다 10배나 비싼, 개당 만 원이었다. 잘 됐을까?
세상에, 맛있는 사과까지 먹으며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 뭘 못 하겠는가. 그것도 단돈 만 원에! 마케팅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떨어지지 않은’을 수험생과 연결한, 남들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 덕분이었다.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 남해안에 있는 한 사찰이 갑자기 수험생들에게 유명해진 일이 있었다. 사찰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가게 되자, 이 사찰에서 ‘부처님 위로 케이블카 타는 자는 평생 재수 없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는데, 수험생들이 좋은 일이 없다는 뜻의 재수(財數)를, 1년을 더 공부해야 하는 재수(再修)로 위트 있게 해석했던 것. 덕분에 한동안 ‘꼭 가봐야 할 명소’가 됐을 정도였다. 수험생의 이런 마음을 확 잡았으니 대박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의 역사에서도 이런 역발상은 종종 정도가 아니라 흔히 나타나는 번성의 비결이다. 지금으로부터 5억 년도 훨씬 더 된 캄브리아기 시절, 그러니까 생명의 대폭발로 세상이 춘추전국시대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을 때, 생명체들은 너도나도 ‘갑옷’을 걸치기 바빴다. 언제 어디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세상이라 바닷물과 바위에 녹아 있는 풍부한 칼슘으로 몸을 지키는 외골격을 만드는 데 골몰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조개의 두꺼운 껍데기, 갑각류의 딱딱한 외피는 이때의 유산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 생명체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장의 안전을 확보할 순 있지만, 공력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지는 단단한 외피 속의 삶 대신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적합한 삶을 지향했다. 단단함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두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척추를 만든 척추동물이었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속도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들이 이후 세상의 주류가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언제 어디서나 남다른 존재가 되는 비결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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