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니까 기회 오더라” 한식 외길 40년, ‘아시아 최고 여성 셰프’의 정체
내가 잘못 살지 않았구나. 위안을 받았어요.
무대는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아시안 라이브’ 레스토랑. 조희숙 셰프는 오는 20일까지 ‘아시안 라이브’ 프로모션을 통해 본인의 시그니처 한식을 선보인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조 셰프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 셰프는 ‘친정’이라고 표현했다. 23년 만에 인터컨티넨탈 호텔 주방을 찾은 조 셰프를 직접 만났다.
40년 동안 한식 외길을 걸어온 조 셰프에게는 ‘한식 대모’ ‘셰프들의 셰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19년 한식공간으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그는 202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됐다.
1983년 세종호텔에서 요리를 시작한 조 셰프는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신라호텔 등 특급호텔 주방을 거쳤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에는 96년에 합류해 2000년까지 한식 과장으로 일했다.
A 예전에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이 아직도 있다. 이번 행사를 성사시키는데 오흥민 총주방장 공이 컸다. 옛날에는 앳된 직원이었는데 지금은 총주방장이다. 옛날 얼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Q 이번 프로모션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A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친정’ 같다. 편하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 맺었던 인연이 현재를 만든 거다. 호텔 나와서도 인생을 잘 꾸려 나갔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왔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Q 근황이 궁금하다.
A 2021년 8월을 끝으로 개인 레스토랑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대신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일명 ‘조희숙 사단’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TF팀을 꾸려 준비하고 요리를 낸다.
조희숙 셰프는 강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식진흥원 사외 이사로 있는 조 셰프는 한식을 가르치는 일이 ‘공적인 의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오래동안 쌓아온 제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교 강단에도 섰던 조 셰프는 2008년을 끝으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접었다. 현장에서 가르치는 게 더 맞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 조 셰프에게 한식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활동하는 셰프들이다. 조 셰프는 “한식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으면서 한식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셰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40년 한식을 요리한 그에게도 요즘 K-푸드 열풍은 놀랍기만 하다.
“죽기 전에 이런 시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팬데믹 이전 2018년 한식공간 운영하던 시점부터 조짐이 보였다. 외국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전 세계 셰프들이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앞다퉈 한식공간을 찾았다.
Q 한식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까
A 외국인이 열광하는 ‘K-푸드’ 중에는 치맥이 있다. 잘 팔리고 널리 알려졌는데 근본을 따지고 보면 우리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한국 음식이라고 알려진 것까지도 한식이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 다르다. 다만 대중적인 음식과 정통 한식이 공존하는 것이 음식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 음식이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피자’처럼 한국 했을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스테디셀러 메뉴도 있어야 한다.
조 셰프는 스테디셀러로 가장 잠재력이 있는 메뉴로 비빔밥과 잡채를 꼽았다. 비빔밥의 경우 채소가 많이 들어간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어느정도 쌓이면서 한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가 됐다.
Q ‘한식의 기본을 지키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미한다’는 평을 받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한식의 기본은 무엇이며 또 본인만의 철학은 무엇인지.
A 한식의 기본은 ‘장으로 맛을 내는 것’이다. 음식을 담아 내는 형태나 스타일은 요즘 감각에 맞추되 맛은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철칙이다.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문화는 서로 섞이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되지 않으려면 각각 고유성을 유지해야 한다.
어려운 것은 요리, 음식은 산업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한식을 규정하는 기준과 조건이 명확해야 한다.
Q 한가지 업을 40년 해왔다. 원동력이 무엇인지
A 처음 시작했을 때 요리사는 존재감이 없는 직업이었다. 남자 요리사들은 본인 직업을 숨길 정도였다. 중학교 가정 선생님을 그만 두고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요리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더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모두가 반대하던 거라서 후회하지 않도록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40년 동안 한식을 요리했지만 현장은 매우 다양했다. 그때그때 조직과 상황에 맞춰 다양하게 풀어냈기 때문에 오래 할 수 있었다. 10년 일한 세종호텔을 그만 두게 됐을 때 크게 좌절했다.
시간이 지나고보니 내가 그때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인생사 새옹지마다. 좌절의 순간이 나중에는 잘된 일이 될 수 있다. 세종호텔 그만두고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으로 옮기는 계기가 됐고 그 이후에 더 큰 호텔에서 역량을 펼쳐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하다 보면 ‘그만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기를 견디다 보면 분명 다른 기회가 찾아 옵니다. 참아내면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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