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반 컵’에 ‘잿밥’ 뿌린 일본…기시다 공물 봉납 이어 의원 96명 신사참배
윤 정부 한·일관계 개선 조치 호응 요구 6개월 넘게 외면
과거사 문제 퇴행만 거듭…외교부 “유감” 의례적 논평만
윤석열 정부의 선제적 한·일관계 개선 조치에도 일본 정부·정치권의 과거사 문제 퇴행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과 참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유감을 표한다”는 의례적인 논평만 냈다.
외교부는 18일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기시다 총리와 일본 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과 참배를 두고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날 대변인 논평은 지난 8월15일 일본 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 당시 논평과 동일한 내용이다.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약 96명은 ‘추계 예대제’(가을 큰 제사) 이틀째인 이날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집단적으로 참배했다. 국회의원 모임의 야스쿠니 집단 참배는 패전일인 8월15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전날 기시다 총리도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마사카키’라고 불리는 공물을 봉납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근대 일본의 침략전쟁을 일본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자위전쟁으로 평가하는 군국주의 상징이자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미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도쿄 지요다구에 세워진 야스쿠니신사는 1867년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246만여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일본 최대 규모 신사이다. 그중 90%에 가까운 약 213만여명은 태평양 전쟁과 연관돼 있다. 1978년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전범 14명을 합사해 국제적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이 같은 과거사 관련 행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기대하는 ‘성의 있는 호응’과도 배치된다. 정부는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전후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내세워 선제적으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해주고 ‘셀프 배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제동원(징용) 제3자 변제 해법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물컵의 반을 채웠고 남은 반 컵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했지만 6개월 넘게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와 ‘2023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과 강제동원 등 한·일 주요 현안에 대한 서술을 왜곡하는 등 한국 정부 기대와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은경·이윤정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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