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닥쳐, XX아!"…감정노동자 보호법 5년, 바뀐 건 없었다

김지윤 기자 2023. 10. 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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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7년 졸업 앞두고 현장실습 중이던 고3 여학생이 저수지에 뛰어들어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실습한 곳은 통신사 콜센터였습니다. 감정 노동이라고 하죠. 고객이 윽박지르고 폭언을 쏟아내도 참고 응대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컸다고 합니다. 이 일로 콜센터 상담원 같은 감정 노동자들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죠. 이 학생의 이야기는 '다음 소희'라는 영화로도 나왔고요.

이 희생 이후 2018년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업주가 책임지고 노동자들 괴롭힘 당하지 않게 예방하고, 피해 입으면 업무 중단시키거나 바꿔줘야 합니다. 제대로 안 하면 최대 1천만 원 물게 했죠. 이 법이 시행된 지 오늘로 꼭 5년입니다. 그러나 감정노동자들, 고객 갑질부터 폭언, 실적 압박까지 5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합니다.

김지윤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월 은행 콜센터에 전화가 왔습니다.

이체 한도가 낮아 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며 다짜고짜 욕 부터 합니다.

[국민은행 콜센터 : 방금 전에 나랑 상담한 ○ 바꿔! 너희들 같은 건 ○이라고 해야해 ○○놈들아! (죄송합니다만) 입 닥쳐, ○○아!]

2분 동안 18번이나 했습니다.

그래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현주/콜센터 노동자 : 세 번의 경고를 하고서도 관리자를 통해서 확인을 하고(전화를 끊을 수 있어서) (관리자 답변이) 업무에 대한 문의를 하시기 때문에 아직은 전화를 끊지 마라.]

욕만 안 하면 사실상 끊을 수 없다는 걸 악용하기도 합니다.

[하나은행 콜센터 : 지금 내가 욕하길 기다리고 있는건가요 혹시? 전화 끊으려고?"]

그러면서 화도 내고 윽박도 지릅니다.

[현대해상 콜센터 : 빨리 확인좀 해달라고요! (불편 많으셔서 화나셨겠지만 화 푸시고요. 더 이상 응대 어렵습니다.) 무슨 이유로!]

5년 전 시행된 관련법에는 폭언 등으로 고통 받으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표준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사업장 마다 적용되는 건 제각각입니다.

웬만해선 전화를 끊을 수 없는 현장 분위기를 바꾸기엔 역부족인 겁니다.

[김현주/콜센터 노동자 :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냐. 그러니까 너는 상담사밖에 못하고 사는 거다. 명백한 욕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될지 감지가 안 오는…]

적절한 휴식시간 보장도 안되고 있습니다.

한 은행 콜센터의 개인 근무표입니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면 하루 평균 8분이 전부입니다.

1분도 못 쉰 사람도 있습니다.

[김현주/콜센터 노동자 : (업무평가) 5점을 받으려면 콜 130~140개를 받아야 해요. 화장실을 가고 싶을 까봐 물을 못 마시는 거예요.]

노동부 가이드라인인 2시간에 15분 휴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신희철/감정노동네트워크 집행위원 : 응대매뉴얼이 너무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어서, 가장 짧은 절차를 통해 전화를 끊거나 피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사례를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법과 규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영상그래픽 김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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