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참사에 4자회담 무산…‘반쪽’ 된 바이든 중동 순방외교
바이든, 폭발 관련 “다른 쪽 소행인 듯” 이스라엘 입장 ‘지지’
팔 수반 ‘만남 거부’에 요르단서 열려던 회담은 직전에 취소
‘인도적 지원’ 설득해 가자지구 내 미국인들 ‘출구’ 마련 계획
471명이 목숨을 잃은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피폭 참사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이번 참사 여파로 요르단에서 열릴 예정이던 4자 회담 일정이 전격 취소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를 나란히 방문해 ‘균형’을 갖추려 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 구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에서 병원 피폭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며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오전(현지시간) 삼엄한 경호 속에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이후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에서 “나는 이스라엘 국민과 전 세계인들에게 미국의 입장을 알리고 싶은 단순한 이유로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다시 약속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당신의 방문은 전시에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발생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해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소행이라는 이스라엘 측 주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본 바로는 그것은 당신이 아닌 다른 쪽이 한 것처럼 보인다”며 “무엇이 폭발을 일으켰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정보기관의 독립적인 검증 과정을 거친 후 나온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는 중동 지역의 성난 여론을 더욱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랍 국가들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이 “역내 긴장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며 “미국이 ‘정직한 중재자’로 보이려고 했던 노력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요르단으로 이동해 요르단 국왕과 이집트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4자 회담을 열 계획이었지만 취소됐다. 미국 대통령 회담 일정이 직전에 취소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알아흘리 병원 참사 이후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 내 미국의 입지가 더욱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리처드 고원 국제위기그룹(ICG) 분쟁 전문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목적은 미국이 이 상황에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전쟁을 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같은 비극적 사건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로를 열도록 이스라엘을 설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을 받은 뒤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해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다.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물자를 전달할 길을 열고 봉쇄로 가자지구에 갇힌 미국 국적자들에게 출구를 마련한다는 게 미국의 계획이다. 백악관도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이스라엘의 봉쇄 완화라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설득해 인도주의적 지원이 재개된다면 아랍권이 확신하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파성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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