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대입 제도는 왜 이렇게 자주 바뀌나

오창민 기자 2023. 10.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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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나 경제 정책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고물가에 민생을 지원하기 위한 유류세 감면만 해도 수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런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유권자의 환심을 살 것 같은 정책이 있다. 바로 대학입시 개편이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입시는 사회적 파급력이 막강하다. 크고 작은 문제가 늘 발생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학생들은 공부가 힘들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서남수·배상훈 공저 <대입제도>에 따르면 1945년 이후 굵직한 입시제도 개편만 24회에 이른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대입제도 개편의 순기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과정은 혼란스럽고,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공정성을 중시하면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게 되고, 다양한 전형 요소를 도입하면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절대평가를 하면 성적 부풀리기가 우려되고, 상대평가는 학교를 전쟁터로 만든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도 입시 개편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도 결국 입시에 손을 댔다. 올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선택과목을 없애 모든 수험생이 똑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이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내신 평가 체계는 5등급 상대평가로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여름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겠다는 발언으로 재미를 봤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도 입시 개편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새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면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이번 개편으로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지만 50만여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문제가 생겨난다. 지금은 수능 탐구 영역에서 사회 9과목과 과학 8과목 등 총 17과목에서 2과목을 선택해 치르는데 앞으로는 모든 수험생이 17개 과목을 재구성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는 해소되지만 사실상 전 과목을 공부해야 하므로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신 상대평가가 2025년에 실시되는 고교학점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설계됐다. 학생이 석차 경쟁에 신경 쓰지 않고 대학교처럼 자신의 진로나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상대평가를 하면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학생들이 몰릴 것이 뻔하다. 벌써부터 고교학점제를 폐지하거나 미뤄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입시 정책은 한 치의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합성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실패다.

수능 수학 출제 범위에서 미적분과 기하가 빠진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 심화과목을 선택해 배울 수 있지만 수능에 포함되지 않으면 학생들의 학습량 자체가 크게 줄어든다. 이공계열 대학 교육 기반이 무너지고 국가의 과학기술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정부가 조만간 발표하는 의사 수 확대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늘려야 하는 입시 정책이다. 성적 최상위 학생들 상당수가 의대 지망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N수생 증가와 이공계 약화가 걱정된다.

이번 개편에도 교육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명문 대학 인기 학과에 가기 위한 경쟁은 줄지 않고, 새 제도에 적응하느라 사교육비 지출은 더 늘어난다. 전국의 고교 수업이 교육방송 수능교재 풀이로 진행되고, 학생부 부풀리기와 자기소개서 미화도 계속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번 개편안의 취지는 차기 정부 입시 개편의 빌미가 될 것이다. 임기 5년의 새 권력자가 교육개혁의 명분으로 결단을 내리면, 산전수전 다 겪은 교육부 관료들은 입시안을 만든다. 캐비닛에 쌓여 있는 기존 자료와 용역 보고서를 참조해 가안을 도출한 뒤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진행하고, 결정 권한은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긴다. 미래인재 양성, 공교육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 사교육 감축, 평가의 공정성 제고 같은 문구를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예산당국과 협의할 일도 없고, 법을 고치지 않아도 되므로 야당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번 ‘경향의 눈’ 칼럼도 그즈음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점과 단점을 맞바꾸고 대통령 이름과 몇 가지 숫자만 수정하면 된다. 웃기면서도 슬픈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자화상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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