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지평 너머] 독립언론이 살아있는 나라는 기근이 없다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주목한 후생경제학의 틀을 정립한 공로로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다. 1943년 인도 벵골 대기근을 목격했던 그는 기근이 단순히 식량 생산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재와 불평등 등 정치·사회적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야당이 있으며, 검열 없이 정부 정책을 자유롭게 보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무리 가난해도 실질적인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지지를 통해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정부는 기근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강력한 정치적 인센티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세기 이후 기근이 발생한 1930년대의 우크라이나, 1958~1961년의 중국, 1970년대의 캄보디아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사하라사막 남부 일부 나라들은 대부분 일당독재나 폭압적인 군사정부 국가들이다. 센 교수는 <자유로서의 발전>(1999)에서 독립적 언론과 민주주의가 부재한 나라에서 벌어진 재난의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들었다. 1958년 시작돼 3년여간 진행된 이 운동은 대대적인 생산력 증대 정책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집단농장화와 농촌 노동력을 과도하게 흡수한 공업화 등으로 농업이 붕괴하면서 굶어죽은 사람만 수천만명에 이르는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당시 중국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였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독립적인 언론을 가진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재난 기간 동안 언론으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 뉴스가 자유롭게 전달되는 시스템의 부재는 정부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 중앙정부는 인정을 받고자 경쟁하는 지방 관료들의 장밋빛 보고와 스스로의 선전에 속게 되었다는 것이다.
센 교수는 1997년 발생한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으로도 통치권력과 유착한 금융기관의 부적절하고 위험한 투자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민주적 체제의 부재를 꼽았다. 자유로운 독립언론은 기근이든 경제위기든 국가가 파탄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을 보면 우리 사회의 조기경보시스템을 위태롭게 한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감사원과 검찰을 동원해 전격전을 펼치듯 방송정책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KBS 이사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진을 여권 우위로 재편했다. 그 과정에서 전 정부 때 임명된 방통위원장, 방심위원장, KBS 이사장, 방문진 이사장, KBS 사장과 각 기관 야권 이사들이 줄줄이 해임됐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이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것은 그동안의 과정이 무리하게 추진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최근 KBS 이사회는 야권 이사들의 반발은 물론 여권 이사들 사이의 내홍까지 겹치며 회의가 연기되고 이사가 교체되는 우여곡절 끝에 내정설이 돌았던 ‘친윤’ 인사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제청하는 데 이르렀다.
정부가 ‘가짜뉴스 근절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드는 등 이른바 ‘가짜뉴스’ 잡기 총력전에 나서는 것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언론은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기사를 써야 하고, 사회를 혼란케 하는 허위 조작 뉴스들은 없어져야 할 대상인 것은 틀림없는 전제다. 그러나 정부가 주요 타깃으로 삼는 가짜뉴스의 대부분은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은 것들이다. 가짜뉴스 개념이 모호한 상태에서 정부가 자의적 판단으로 가짜뉴스 단속에 열을 올린다면 사실상 정부 비판 여론에 대한 통제가 될 것이고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정부가 공영방송 장악과 가짜뉴스 잡기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 환경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서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다. 권력은 민주주의 투사든, 법과 원칙 위에서 살아온 검사든, 그 누가 잡는다 해도 그 자체로 부패하고 남용될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과 언론은 긴장 관계 속에서 삐거덕대야 정상이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입맛에 맞는 뉴스들만 내보내는 것은 언론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는 길이다.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이 아니라 권력과 유착하는 언론이 진짜 문제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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