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 소식씨

김숨 소설가 2023. 10.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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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를 씻기고, 나를 먹이고 … 오늘도 … 그게 중요한 일이지. 그게 의미 있는 일이지. 눈 뜨며 ‘오늘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리고.” 소식씨는 그래서 오늘도 정성껏 자신을 씻기고, 밥을 지어 먹인다. 불과 두 달 전까지 그녀는 밥을 넘기지 못했다. 작년 10월30일 아침 7시 이후로 밥알이 목구멍으로 삼켜지지 않았다. 그날, 그 시간에, 그녀는 딸 정아의 ‘모르는’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어. 참사가 일어난 그곳에 내 딸 정아가 있었다고 했어.”

“정성껏 화장을 하고,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스타킹에 구두를 신고 손님을 맞았지.” 소식씨는 1988년 8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4년 동안, 대전 한민시장에서 ‘꽃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남녀노소 신발을 팔았다. “내일 신을 신발이 급히 필요한 손님을 기다리며” 밤 10시 전에는 셔터를 내리지 않았다. “가장 두려워했던 거? ‘그 집 신발 비싸, 그 사람 맘 변했어.’ 그런 말 듣는 거. 신발을 사지 않은 손님도 뒷모습이 훈훈해져 가게를 나서야 내 마음이 좋았어.” 34년 내내 그녀는 스스로가 정한 두 가지 철칙을 지켰다. 원가의 몇 퍼센트 이상 이문을 남기지 않는 것과 박리다매. 출근길에 늘 똑같은 다짐을 했다. ‘오늘도 입 조심. 내 마음은 울어도,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자.’

“소식이라는 나?” 1961년생인 그녀는 6남매의 맏이. 어머니가 새벽부터 밤까지 노점상을 해 먹고 살아야 해서, 그녀는 고사리손으로 동생들을 돌봤다. 집에 쌀이 떨어지면 친척집에서 얻어온 쌀로 밥을 지어 동생들을 먹였다. 열한 살 터울인 막내를 업고 학교에 갔다. ㄷ여상을 졸업하고 ㄱ상사 대리점에 취직, 월급을 받으면 봉투째 어머니께 드렸다. 월급은 고스란히 동생들의 학비로, 생활비로 쓰였다.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다. ‘우리’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했으니까.

스물다섯 살에 결혼한 남편은 경제력이 없었다. 1987년 2월에 태어난 정아가 돌 지나고 얼마 안 돼 그녀는 신발가게를 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다음’으로 미루며 신발들과 함께 살았다. “다시 살라고 해도 이보다 더 잘 살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재 중인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늘 부채감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훌쩍 자랐다는 걸, 다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은 없어.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보고,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목소리 듣고 싶을 때 전화해 목소리를 들어.”

소식씨는 10월30일 아침 7시로 자꾸만 되돌아간다. “그길로 서울로 올라가 이태원주민센터에서 마냥 기다렸어. 정아가 어느 병원으로 실려 갔는지 다들 모른다고 했어.” 정오가 돼서야 아주대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걸 알았다. 딸을 보고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저 “자고 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정아는 스스로 독립했다. 제과제빵사와 커피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 매니저로 일하며 여행 책도 냈다. 캐나다에 2년, 인도에 6개월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두 차례나 완주했다. 재작년에 그녀는 “고맙고 믿음직한 딸” 정아와 처음 단둘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그때까지 그녀는 딸이 아빠를 닮았다 생각했다. “엄마인 날 닮았다고 했어. 엄마를 닮아 자신이 대범하고, 진취적이라고.”

11월1일은 3년 전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기일. 그녀에게 ‘죽음’은 다 ‘똑같은 죽음이 아니다.’ 정아의 죽음은 ‘죽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이다. 그래서 딸을 묻은 곳을 지금껏 찾아가지 않았다. “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말’이 상처가 돼.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 더 짙어져. ‘너만 잃은 게 아니라는 그 말’도 상처가 돼.”

요즘 소식씨의 삶의 원칙은 ‘오늘 내가 먹을 양식만 내 집에 남겨두고 남은 양식은 이웃에게 나눠주자’다.

“소식이라는 나? ‘나는 내 삶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러니 오늘을 나 ‘소식으로’ 살아야겠지.”

그래서 오늘도 오늘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로 시작하는 소식씨. 그녀에게는 아직 애도의 시간조차 오지 않았다.

“내 딸은 아직 자고 있어.”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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