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 수산업 피해를 ‘국민운동’으로 극복하려 해선 안 된다

기자 2023. 10.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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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일본 내 신문에 한 의견 광고가 게재됐다.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일본 생선을 먹고 중국을 이기자.”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지난 8월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개시하자 중국은 이에 맞서 일본으로부터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홍콩도 후쿠시마·도쿄 등 10개 도·현으로부터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과 홍콩은 일본의 수산물 수출의 40%를 차지한다. 금액으로 치면 연간 약 1600억엔(약 1조4417억원)이나 된다. 일본 내 수산업자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의견 광고는 1억2000만명의 일본 국민이 1인당 100엔씩 국산 어패류를 더 구입하면 중국과 홍콩의 금수조치로 인한 손해액 1600억엔을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말도 나열돼 있었다. “맛있는 일본 수산물을 먹고, 중국의 횡포를 이겨냅시다. 많이 먹고, 영양을 공급하고, 환한 미소로 중국을 이겨냅시다.” 이 광고를 낸 단체는 보수파 논객으로 알려진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코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쿠라이는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일본의 군사력 강화 등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곤경에 빠진 수산업자를 떠받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해양 방출 직후 원전과 무관한 공공시설과 음식점 등에 중국 국가번호(86)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웃나라를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듯한 언설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시민들의 심정에 편승해 ‘먹고 응원하기’ 캠페인을 국민운동으로 밀어붙이려는 일본 정부다. 일본 정부는 지난 9월4일 중국 등의 금수 조치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했다. 주요 항목 중 하나가 소비 확대를 위한 국민운동 전개였다. ‘고향 납세’를 활용한 대처가 대표적이다. 고향납세란 자신이 사는 지자체에 내야 할 세금의 일부를 고향이나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후쿠시마 현내 해안가 자치단체에 기부해 답례품으로 생선을 받으면 후쿠시마 수산물을 먹고 응원하는 결과가 된다.

수산업자들을 곤경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 수산물 수입을 중단한 중국 정부에 있을까? 아니다. 애초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다. 원전 사고를 냈고,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해 버렸다. 더구나 이웃나라의 이해를 얻지 못한 채 강행해 국내 수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비판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받아야 하지만 일본 국민의 분노의 화살은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 언론도 대중 감정 악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양 방출이 시작된 이후 일본 언론들은 연일 “중국의 항의 전화에 곤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수입 중단으로 생선이 팔리지 않는다” 등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마치 일본은 ‘피해국’이고, 중국이 ‘가해국’인 것 같은 보도 행태다. 정부와 일체화된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오염수 방출이 시작되자 ‘나쁜 것은 중국’이란 선전에 가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 ‘먹고 응원하기’에 어긋나는 언행 통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있다. 지난 8월 말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장관은 ‘처리수’를 오염수로 지칭했다. 현역 각료의 오염수 발언에 총리 관저는 매우 민감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노무라 장관에게 발언 철회와 사과를 지시했다.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이 대응을 “당연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노무라 장관은 9월 중순 단행된 개각에서 교체됐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무렵의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국민정신 총동원이란 이름으로 전 국민이 전쟁에 협력할 것을 요구받았다. 최대한의 국력을 전쟁에 쏟아붓기 위해 거리에는 “사치는 적이다! 사고 싶지 않아요. 이길 때까지는” 등의 표어가 내걸렸다. 반대하거나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은 비국민으로 불렸다. 전후 78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사고 싶지 않아요”라는 슬로건은 “생선을 사자”로 바뀌었다. 오염수 해양 방출에 반대하고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비국민으로 불릴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오염수 해양 방출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육상 보관 등 대체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키우치 쇼헤이 전 아사히신문 기자

마키우치 쇼헤이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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