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茶문화 상징 금당다우 고택, 4년째 복원 못 하고 방치

조성우 기자 2023. 10. 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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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차(茶) 문화를 상징하는 금당다우 고택 부재(기와·목재)가 4년간 폐교한 학교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복원 사업을 하겠다며 부산 동구가 부재를 가져갔지만 지역과 연관성이 부족해 사업 추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동구가 금당다우 고택과 연관성이 떨어져 주민의 사업 추진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며 "상징성이 큰 공간인 만큼 차 관련 기관이나 타 지자체가 복원할 의사가 있다면 부재를 넘길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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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茶명인 최규용 선생 거주…재개발로 해체, 기와·목재 남아

- 동구가 복원하겠다며 맡아 보관
- 도시재생 공모 떨어지며 하세월
- 지역 연관성 없어 자체사업 무리

부산 차(茶) 문화를 상징하는 금당다우 고택 부재(기와·목재)가 4년간 폐교한 학교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복원 사업을 하겠다며 부산 동구가 부재를 가져갔지만 지역과 연관성이 부족해 사업 추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오후 동구 옛 좌천초 창고에 보관 중인 금당다우 기와. 조성우 기자


18일 부산 동구에 따르면 금당다우 고택의 부재가 2019년 강서구 대저동에서 폐교한 옛 좌천초등학교 창고로 옮겨졌지만 4년째 보관만 하고 있다. 부재는 건축물에 쓰이는 주요 재료로 기와와 목재 등이다.

이 고택은 금당 최규용 선생이 살던 곳으로 경남 산청군의 전통 가옥을 1975년 서구로 옮겨와 복원하면서 지어졌다. 최 선생은 부산에서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선 차 문화 연구가이자 다도 보급가다. 1978년에 금당차회를 설립해 다도 문화 교육을 시작한 그는 1989년 중국차문화연구회로부터 다성(茶星) 칭호를 받고 국제 교류의 기틀을 세우는 등 국제적인 차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고택은 당시 최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고 전국 차인을 맞이한 곳으로, 현대 차문화사의 사랑방 역할을 한 상징적인 공간이다. 일본 와세대 대학에서 토목학을 공부한 최 선생은 1925년 영도대교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택은 애초 서구 송도해수욕장 앞 부지에 있었으나 2018년 일대 재개발로 해체되면서 2019년 7월 강서구 대저동 나대지에 방치됐다. 이에 동구가 복원 의향을 밝혀 관내로 가져왔다. 당시 서구와 해운대구도 앞서 복원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으나 부재 부식 문제 등으로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동구는 고택 부재를 옮기면서 도시재생사업으로 복원하려고 했으나 공모에서 떨어졌고, 여러 활용 방안을 강구했으나 지역과의 연관성이 떨어져 관련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결국 복원 계획이 지지부진하면서 고택 부재는 4년간 방치됐다.

현재로서는 복원 계획도 없지만 이를 돌려주기도 어렵다. 지난 5월 김진홍 동구청장이 최 선생의 제자와 유족을 만나 부재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받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일부 유족은 반환 받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나 공식 적인 요청은 없었다고 구 관계자는 밝혔다. 이후 동구는 부산 16개 구·군을 비롯해 전국 지자체와 미술관 등에도 복원 제안서를 보냈으나 불발됐다.

구 관계자는 “동구가 금당다우 고택과 연관성이 떨어져 주민의 사업 추진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며 “상징성이 큰 공간인 만큼 차 관련 기관이나 타 지자체가 복원할 의사가 있다면 부재를 넘길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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