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병원 폭격 참사에 아랍권 분노 폭발…바이든 방문 '먹구름'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1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병원이 폭격 당해 수백 명이 숨지며 아랍권의 분노가 커졌다. 이스라엘이 책임을 부인하고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를 지목했지만 중동 전역에서 시위가 일며 역내 긴장 고조는 불가피해 보인다. 사건 여파로 요르단 회동이 불발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졌다.
<로이터>, <AP>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17일 저녁 가자지구 가자시티 중심부 알아흘리 아랍 병원이 폭격 당했다. 외신이 확인한 영상을 보면 한밤중에 발사체가 날아오는 듯한 굉음이 들린 직후 병원에서 화염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가자 보건부는 병원 공습 사망자가 500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병원에는 환자 뿐 아니라 공습을 피해 온 수백~수천 명의 피난민도 머물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건부는 "전례 없고 형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수의 여성과 어린이가 희생됐고 "의사들이 마취도 없이 복도에서 수술 중"이라고 전했다.
알아흘리 병원은 성공회에서 전액 자금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병원으로 어떤 정치 세력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설명했다. 예루살렘의 성공회 고위 지도자인 캐넌 리차드 세웰 세인트 조지대 학장은 방송에 지난주 6000명에 달하는 난민이 해당 병원 뜰에 피신해 있었지만 앞서 14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병원 일부가 피해를 입어 4명이 부상당하자 5000명 가량이 떠나 1000명 가량만 남아 있었다고 전했다. 세웰 학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 병원, 아흘리 아랍 병원이 이스라엘 미사일에 직격 당해 여성과 어린이 수백명이 죽었다"며 "이에 대한 어떤 정당화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폭격 당시 알아흘리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영국 런던 출신 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는 BBC에 "병원 일부에 불이 붙었고 수술실 천장 한 부분이 무너져내렸다. 사방이 깨진 유리로 뒤덮였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의사는 방송에 폭격으로 병원 기능의 80%가 멈췄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공격 배후로 팔 무장 단체 지목…BBC "아랍권 안 믿을 것" 확전 우려
이번 병원 폭격은 이스라엘이 가자에 열흘 가량 무차별 공습을 이어 오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지만 이스라엘 쪽은 공격 주체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지목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영상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군은 가자 (알아흘리) 병원을 공습하지 않았다"며 "해당 병원은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로 폭격 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가리 대변인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 레이더 시스템과 로켓 발사 실패에 대한 무장 단체 간 교신에 관한 첩보에 근거해 이슬라믹 지하드가 병원 폭발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슬라믹 지하드는 가자에서 하마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무장 세력이다. 하가리 대변인은 병원 폭발 직전인 17일 저녁 6시59분께 이슬라믹 지하드가 인근 묘지에서 로켓을 발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가자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1300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이 숨지고 최소 199명이 인질로 잡힌 뒤 이스라엘군은 가자에 보복 공습을 이어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택, 학교, 병원 등 민간시설이 폭격됐다는 증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BBC는 "수백만 팔레스타인인들과 중동인들은 (병원 폭격에 책임이 없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이번 공격으로 인한 분노가 확전 가능성을 높이는지 여부"라고 우려했다.
이슬라믹 지하드 쪽은 책임을 부인했다. 다우스 셰하브 이슬라믹 지하드 대변인은 <로이터>에 이스라엘 쪽 주장은 "거짓, 조작이며 완전히 틀렸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그들이 민간인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학살을 덮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라믹 지하드는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기 위해 1980년대 가자에서 창설된 단체로 가자 및 요르단강 서안에서 활동 중이다. 하마스와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때로 경쟁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항해 협력할 때도 있다.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간주된다.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들처럼 과거 로켓 오발사로 민간 지역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병원 공격이 "끔찍한 전쟁 학살"이며 "이스라엘이 모든 레드 라인을 넘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도 병원 공습이 이스라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아랍 전역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바이든, 이스라엘·아랍 사이 균형 잡기 더 어려워질 듯
가자 보건부에 의하면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3000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식량, 연료를 포함한 가자 완전 봉쇄로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병원 폭발은 국제사회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오늘 가자 병원 공습으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한 것에 경악했다"며 "즉각적 휴전"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성명을 내 "알아흘리 병원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번 사태로 아랍 전역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일며 역내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BBC와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 밖에 시위대가 불을 질렀고 다른 무리는 프랑스 대사관 건물에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과 제한적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는 무슬림과 아랍인들에게 "즉시 거리로 나와 격렬한 분노를 표출할 것"을 촉구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영국 및 프랑스 대사관, 튀르키예와 요르단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프랑스 대사관 앞, 모로코 수도 라바트 및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도 이스라엘의 병원 공격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과 가자 주민들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었다.
요르단강 서안 곳곳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7일 밤 압바스 수반이 주민들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자치 정부 쪽은 최루탄과 섬광탄을 사용해 시위 해산을 시도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엠레 바사란은 알자지라에 "튀르키예에선 수십 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역사적인 반이스라엘 감정이 있었다"며 "지금 튀르키예엔 이스라엘에 대한 매우 눈에 띄는 분노가 있다. 거리에서 바로 느낄 수 있고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랍 지도자들도 연이어 성명을 내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17일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이스라엘이 가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부상자와 병자를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추악한 학살을 절대적으로 규탄한다"며 이 사건은 "극악무도한 전쟁 범죄"로 "이스라엘이 가자에 대한 잔인한 침략을 즉시 중단"해야 하며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와 정당한 대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 알아흘리 병원 폭격"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도 성명을 내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 알아흘리 병원을 폭격해 어린이를 포함해 수백명의 민간인 사망을 초래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것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분쟁 해법을 모색하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이번 방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되 주변 아랍국들도 다독여 확전을 방지하고 민간인 보호책도 끌어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가자 병원 폭격으로 아랍권의 분노가 커지며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당장 네타냐후 총리 회담 뒤 요르단으로 이동해 압바스 수반, 압둘라 2세 국왕, 엘시시 대통령을 만나려던 계획이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쪽의 취소로 어그러졌다. <AP>를 보면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국영 방송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 지역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요르단은 "전쟁을 멈추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간성을 존중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지원 전달" 목적에 모두가 동의할 때만 정상회담을 주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분쟁에서 미국이 강하게 이스라엘 편에 선 탓에 아랍권에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많은 아랍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이 하마스를 칭한 "순수한 악" 발언 등 미국 고위층의 발언이 전쟁을 부추기고 이스라엘 공격에 청신호를 부여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기반을 둔 중동연구소 연구원 하프사 할라와는 이번 사태로 중동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훼손됐다며 "미국인들은 이 지역에서 도덕적 입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BBC는 또한 요르단 회담 취소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음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남부에서 보도하는 제레미 보웬 BBC 국제 에디터는 "몇 년 전이었다면 그들은 미국 대통령에게 커다란 모욕을 안기는 이러한 일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텔아비브에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병원 공격이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이들의 소행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매체인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가자 병원 폭발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며 "내가 본 바로는 당신들이 아닌 다른 이들의 소행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이 행한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일병 사건'으로 출범한 군인권보호관, '윤 일병 사건' 진상규명 거부
- 가자 병원 폭격 참사에 아랍권 분노 폭발…바이든 방문 '먹구름'
- 尹대통령, 헌재소장 후보에 이종석 지명
- 민주당, 국감 반환점 맞아 대정부 공세 박차…양평고속道·검사탄핵 등
- 尹대통령 "국민은 늘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 안 돼"
- 민주노총, 11월 11일 '윤석열 정권 퇴진' 대규모 집회 개최
- 1주기 맞은 이태원 유족들 "尹, 진정 나의 대통령이 맞습니까?"
- 선거 전날 발표한 선관위 보안점검, "관권선거" 의혹에 국정원 "사실무근"
- 서울지하철 11월 9일 총파업 돌입…"인력 감축으로 안전 담보할 수 없어"
- 尹대통령 "국민통합 정책, 얼마나 집행했는지 돌이켜보고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