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exclusive] 네가 왜 거기로 가?...축구계를 들썩이게 한 '충격적인' 이적 TOP 10
[포포투]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기사만 모았다. 영국 최고의 풋볼매거진 '포포투'의 독점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전달한다. '별'들의 단독 인터뷰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442.exclusive'를 통해 함께 한다. 기대하시라. [편집자주]
이적시장에서 발생하는 일이 모두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에 열거할 이적들은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0. 리키 비야&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라싱 클럽&우라칸 to 토트넘)
1978년 당시 잉글랜드 클럽들은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계약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비야와 아르딜레스가 런던으로 향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사건이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싸고 10주간 전쟁을 치른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적대감 속에서도, 두 사람은 클럽의 전설이 됐다. 아르딜레스는 10년 동안 화이트 하트 레인에 머물렀다.
9. 앤디 콜 (뉴캐슬 t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뉴캐슬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맨유의 강력한 '우승' 경쟁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몇몇 스타 플레이어들을 맨유에 매각하기도 했다.
뉴캐슬의 감독이었던 케빈 키건은 콜을 떠나보낸 것을 정당화해야만 했다. 뉴캐슬 서포터들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둘러싸기도 했다.
8. 루터 블리셋 (왓포드 to AC 밀란)
AC 밀란이 블리셋을 존 반스와 혼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왓포드에서 뛰었던 블리셋은 이탈리아 생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블리셋이 웃으며 말했다.
7. 케빈 키건 (함부르크 to 사우샘프턴)
함부르크에서 두 번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한 키건은 1980년 잉글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의 전 클럽이었던 리버풀은 케니 달글리시를 중심으로 더욱 비상하고 있었기에 키건의 복귀에는 관심이 없었다. 키건이 합류한 사우샘프턴은 1부 리그에서 5위까지 차지했다.
6. 로베르토 바조 (피오렌티나 to 유벤투스)
1990년 UEFA 컵 결승전에서 피오렌티나를 꺾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유벤투스는 바조를 데려오며 피오렌티나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전설적인 이탈리아 축구선수인 바조는 라 비올라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피오렌티나를 떠난 후, 그들의 홈 구장에 처음으로 방문한 바조는 페널티킥을 거부했고 팬이 건네는 피오렌티나 스카프를 마다하지 않았다.
5. 에릭 칸토나 (리즈 유나이티드 t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경이 1992년 데이비드 허스트를 영입했다면, 잉글랜드 축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다.
맨유가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뛰던 허스트를 영입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관심을 칸토나에게로 향하게 했다.
4. 카를로스 테베스&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코린치안스 to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6년 남미의 슈퍼스타가 될 듀오는 웨스트햄 이적을 선택했다. 테베스와 마스체라노는 소유권은 브라질 클럽인 코린치안스가 아닌 글로벌 사커 에이전시와 미디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 등 제3자에게 있었다. 이후 웨스트햄은 550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3. 네이마르 (바르셀로나 to 파리 생제르맹)
스페인 법에 따르면, 모든 축구선수는 계약서에 반드시 바이아웃 조항이 있어야 한다. 많은 클럽들은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책정한다. 바르셀로나는 네이마르의 바이아웃으로 1억 9800만 파운드를 책정했다.
파리 생제르맹(PSG)은 그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2017년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 솔 캠벨 (토트넘 훗스퍼 to 아스널)
2001년, 아스널이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리차드 라이트가 자리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라이벌' 토트넘의 주장인 캠벨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자들의 입꼬리는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캠벨은 아스널에서 두 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세 번의 FA컵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토트넘 서포터들로부터 여전히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1. 루이스 피구 (바르셀로나 to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레알 유니폼을 동시에 입은 선수는 피구 외에도 많다. 하지만 이는 2000년대 가장 충격적인 이적이었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의 보석이었다. 그러나 레알은 피구를 설득했고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피구가 이적한 후, 펼쳐진 엘 클라시코에선 그를 향해 돼지 머리가 던져지기도 했다.
글=Greg Lea
에디터=한유철
한유철 기자 iyulje93@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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