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음악가 정율성'. 필자가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접했던 인물이다. 전공 과목인 북한현대사 시간에 대출이 불가능한 자료들이 모여있는 국립중앙도서관 북한 자료실 소장 영상 자료를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시청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시청했던 영화가 북한에서 제작한 '음악가 정율성'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에 지루함을 느끼며 졸음을 쏟아내는 학우도 다수였다. 그리고 얼마 전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의 4·19혁명 묘지 참배 및 사과문 발표 현장에 초청되어 다녀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부딪치며 타오르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쉽게 말해 역사학이라는 것이 탄생한 이유는 '과거의 문화와 가치를 계승하고, 시행 착오를 학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에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존속을 위해 국가의 역사를 교육한다.
하지만 폭풍우와 소용돌이의 연속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근대국가와 현대국가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과거로부터 찾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국가'의 등장 이후 국가를 건국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사는 늘 국가 권력에게 필수 요소였다. 그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의 중앙 권력이 역사를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 모든 과정과 결론은 김씨 일가의 정통성과 위대함으로 종결된다.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제너럴셔먼호 전투를 앞장서서 승리로 이끌었다는 서술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역사를 이용한 일종의 권력형 선전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씨 정권 권력 아래 그들 방식대로 역사를 규정해 버렸다.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35년간 겪었고, 분단과 김일성이 남침한 전쟁으로 비극을 겪은 지 70여년이 지났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한번 국가가 망하고 역사가 뒤틀리는 순간 그 염증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치료제로 외상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지속돼 후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홍범도 정율성 김원봉 백선엽과 같은 인물들에 대해 정부가 바뀔 때마다 평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를 기억해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역사 속에서 각 개인의 삶의 과정을 단면적으로 평가해 기억하는 것은 이미 역사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은 식민 지배와 분단 두 가지 사건이 실타래처럼 얽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이 뒤엉켜버렸다. 무엇이 옳은 기억법인지를 싸우지만, 옳음의 기준을 잃어버렸거나 애초에 찾지 못했을 수 있다. 후대 세대에게 어떠한 역사관을 물려주어야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번영해 나갈 수 있을지가 중심 논제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상처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역사 논의만 떠오르면 파도치듯 끓어오르는 여론을 이권 다툼의 수단으로 돌리는 이들이 나타났고, 이제 생각이 다른 상대를 소멸시키기 위한 소모전 양상이 돼버렸다.
우리는 늘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 개인의 공과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명확히 평가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이다. 전우원과 이인수 박사의 사과 또한 그 시도 중 하나이다. 피해자들이 진심으로 위로받고 기려질 수 있도록 후손들이 그 상처를 회복하는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
식민 지배로부터의 자유, 공산화로부터의 자유, 그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 근래의 논쟁들 자체도 결국 역사적 상처의 염증인 것을 기억하고 다시 설계하자. 우리는 우리의 선대를 어떻게 기억해야만 후대에게 우리의 상처를 경험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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