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정규직 불법·갑질계약 신고 받습니다"
엔딩크레딧, 방송현장 계약서 상담신고센터 운영
내달 17일까지…법조인 상담 및 법률대응 지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갑과 을은 어떠한 경우에도 을은 갑에 대해 고용관계를 주장할 수 없다.”
“본인은 계약과 관련된 일체의 민형사상 소송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약합니다.”
“본인 요청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고 자발적으로 프리랜서 지위를 선택함을 확인합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미는 계약서와 각서 사례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노동권과 법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게 하는 갑질 조항이지만 이런 계약서를 받은 다수 방송 비정규직은 이미 서명을 한 상태다. 사전 정보가 없어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가 고립됐다고 느끼는 상황에선 회사의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탓이다.
방송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노동권단체 '엔딩크레딧'과 직장갑질119는 18일부터 미디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 주는 '계약서 봐 드려요: 방송 현장 불법계약서 신고센터'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미디어 노동자가 이메일(gabjil119@gmail.com)로 불법·갑질 계약서 사례를 보내면, 두 단체 소속 변호사와 노무사 10여 명이 직접 상담한다. 방송현장 계약 실태 전반을 파악한 뒤에는 노동청 집단 진정, 고소·고발 등 법률 대응도 지원할 예정이다. 신고센터는 내달 17일까지 열려 있다.
엔딩크레딧은 “수많은 방송 비정규직들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계약하거나 근로실질과 맞지 않는 계약서를 쓰고 일한다”며 “프리랜서들은 실제로는 방송사 지휘 감독하에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들은 “계약서 이름은 위탁, 위임, 용역, 프리랜서 계약이지만 실제로는 방송사의 지휘 감독이 일상적이고, 계약서가 실제 업무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사용자에게 유리한 조항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다수 방송사들은 방송 노동자들에게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하면서도 정작 계약서엔 방송사 권한을 강조하는 조항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울행정법원은 2022년 MBC의 방송작가 프리랜서 계약서상 “갑(회사)은 을(노동자)의 업무 수행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기하고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을은 프로그램 제작 중 안전조치에 관한 갑의 제반 지시를 성실히 따라야 한다” 등 조항이 노동자성 근거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밖에 △계약 기간을 명시하지 않고 '프로그램 종료 시', '개편 시', '폐지 시'로 기재하는 조항 △프로그램 폐지나 개편 시 노동자가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 △노동자가 업무를 중단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이나 월급 차감을 명시한 조항 등이 방송 비정규직과 '무늬만 프리랜서' 갑질 조항의 대표 사례에 해당한다.
기간제 계약직의 경우 회사가 근로계약을 맺고도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송 후반 작업을 맡는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엔딩크레딧에 “거의 매일 야근하고 12~14시간 일하지만 시간외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해 실수령액은 월 170만 원”이라며 “기타 제반 사항은 법령 및 사업주 판단에 의한다고 돼 있는데 대표 마음대로 하고 있다. 저는 이쪽 일을 할 거라 노동청 신고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드라마 현장엔 여전히 '턴키계약' 악습이 성행하고 있다. 턴키계약은 제작사가 스태프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감독급 스태프(팀장)와만 계약한 뒤 감독급이 팀원들에게 용역비를 나눠주는 형식이다. 이 경우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라마 장비팀 B씨는 엔딩크레딧에 “감독님을 믿고 간다. 계약서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나 같은 막내는 하루 18만 원을 받는데, 15만 원 주는 팀도 있다”고 했다.
엔딩크레딧과 직장갑질119는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첫 단추인 계약이 무늬만 프리랜서를 양산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노동법 사각지대로 내모는 현실을 바로 잡고자 한다”며 “근로계약서 작성, 근로기준법 적용이 정착하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딩크레딧은 18일 오전 11시 서울 상암동 YTN, CJ ENM, 채널A 사거리에서 불법계약서 신고센터 시작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상담 결과를 종합해 내달 21일 국회의원회관 7간담회실에서 방송현장 계약 실태를 밝히는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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