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정치화 논란 압색보다 감청 활용 수사를
'사생활과 안보'의 이론가로 유명한 법학자 대니얼 J. 솔로브는 국가안보와 프라이버시의 두 정책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두 가지 핵심 가치가 있다. 첫째 가치는 통신비밀보호와 통신 자유의 신장이다. 둘째는 엄격한 법률적 절차에 따라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전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문제이고 후자는 국가안보와 법질서를 유지하는 대목이다.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은 여러 차례 개정 과정에 통신비밀보호를 위한 규제만 강화한 나머지 디지털 환경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합법적 감청 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범죄 수사를 위한 개별법의 작동상태가 이토록 심각한 수준인데도 정치와 법조계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토해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수사를 두고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자기 범죄에 대한 방어를 위해서 사법에 정치를 입히는 '사법의 정치화'가 문제라고 대립한다. 필자는 양쪽 모두가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본다. 그럴듯한 법률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행령이 막혀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그 법은 없는 것만 못할 것이다. 예컨대 범죄자는 자신의 죄를 숨기는 가림막으로 삼을 것이고, 수사기관은 실체적 진실에 매이지 않고 방만한 수사에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과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압수수색과 감청, 어느 쪽이 피의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법익이 더 클까?" 뭔 괴상한 질문인가 하겠지만, 보호법익이 국가의 범죄 수사권과 피의자의 인권을 비교 형량하는 것이라 볼 때, 양쪽의 법 집행 측면에서 피의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법익을 저울질해 보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거나 이를 감독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하는 일은 범죄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국민은 압수수색 수사 과정에 검찰이 언론에 슬쩍 흘려서 피의사실이 보도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검언 유착 추정 예들을 접하곤 한다. 검찰은 공개한 게 아니라 하고, 언론 측은 검언 유착을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 "국민 알 권리 침해"라고 각을 세운다. 이런 현상은 압수수색이 공개적으로 이뤄지면서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런데 그 과정에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는 혐의자의 정보 저장매체에는 사생활의 비밀 등 인격적 법익에 관한 모든 것이 기간 제한 없이 저장돼 범죄와 무관한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개연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의 수사 측면에서 보면 압수의 대상인 디지털기기의 휘발성, 피의자의 증거 인멸과 억지 방어력에 따라 수사 효익이 떨어지고 불완전한 증거로 인한 사법적 행정 비용과 사회적 피로감도 큰 것이 현실이다.
반면, 감청은 상당히 다르다. 감청은 압수수색과 마찬가지로 혐의자가 특정되고 압수수색의 대상과 범위가 특정돼 법원 영장을 받아 집행하는 데까지는 유사하지만, 감청 집행 기간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감청은 실체적 증거 지향적인 과학수사이다. 감청 집행 중에는 혐의자가 인지하지 못하나, 집행이 종료되면 반드시 본인에게 감청 사실에 관해 통지해야 하므로 혐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감청영장 신청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법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압수수색 검증 영장은 2012년 10만7499건에서 2021년 31만7509건으로 급증했고, 통신제한조치는 2012년 113건에서 2021년 3건으로 급감했다. 압수수색이 감청보다 인격권 침해성이 훨씬 크다. 입법과 법조계가 눈여겨봐야 할 기이한 현상이다.
수사기관이 혐의자의 휴대폰에 대한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과용하는 것이 절대 아니기를 바란다. 정부(법무부)는 '정치의 사법화'라는 세간의 일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능적 범죄의 실체적 증거를 명징하게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시간 디지털 감청 시스템을 통신 기관이 협조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제15조의2)의 개정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의 정치화' 논란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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