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1인 가구` 현실 겪으며 더 절감… "어려운 분 손잡는 일 소명이라 생각"
1인가구, 우리사회 가장 큰 인구집단… 거스를수 없는 사회현상
관악구 고시촌 생활하며 관심… 122개 정책 정부제안도
"서로 돕고 공유하는 커뮤니티 모델 만들고 싶어"
"1인 가구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구집단이자, 거스를 수 없는 사회현상이고 흐름이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에 맞게 준비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인 가구 정책의 전문가로 통하는 박민선(42·사진) 한국한아름복지회 이사장은 "이제는 어느 누구라도 생애 한 번쯤은 혼자 사는 시기를 거치게 될 것"이라며 "그만큼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은 안팎으로 커지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적 틀은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4인 가구를 기본으로 설계·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재단법인 숲과나눔과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총 5차례에 걸친 1인 가구 연속 토론회를 진행해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부제는 '1인 가구 권리 시리즈'로 잡았다. 1인 가구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제인 안전, 건강, 고립, 범죄예방 등을 각 회차마다 주제로 삼았다.
단편적이나 일회적으로 1인 가구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을 조언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주제별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상황극을 만들고, 주제별 영화상영과 현장간담회, 간식을 먹으면서 토론하는 뒷풀이 간담회, 영화와 드라마에서 표현된 1인 가구 생활상을 모아 영상으로 제작발표한 미디어쇼 등 새로운 형태의 토론회를 시도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대학과 연구소의 학술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특수청소업체 대표, 법조인, 언론인, 경찰, 사회복지사 등 1인 가구와 연관이 깊은 현장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따로 초청해 깊이 있는 토론회를 만들었다. 토론회를 통해 마련된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나 서울시·구의회 등과 협업도 이뤄졌다.
박 이사장은 연속토론회에서 수집한 300개 이상의 1인 가구 정책들을 분석 정리해 9개 분야 122개 정책을 담은 제안서를 지난 8월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전문가들이 나와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흔한 토론방식으로는 1인 가구 이슈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가 있어 새로운 방식의 토론회를 고민하고 도전하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인식개선과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의도는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 같다.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이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토론회와 다양한 정책제안에 참여해줬다"고 보람을 전했다.
1인 가구 연속 토론회는 매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단체, 개인들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토론회장 공간이 꽉 차서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출입문을 열어두고 문밖에서도 토론회의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고 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박 이사장은 토론회를 마치면서 1인 가구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력할 포럼을 구성했다. 박 이사장은 "1인 가구의 문제는 단일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복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요 이슈별, 분야별로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만큼 분야별 전문가, 실무자들이 토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 토론회를 통해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연구나 캠페인 등 이후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논의가 계속 있었다"며 "논의 끝에 토론회를 통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인식개선, 캠페인 전개, 정책연구, 지자체의 정책 자문 및 컨설팅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변화를 촉진할 수 있겠다는데 뜻을 모은 분야별 전문가들이 포럼을 구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안전, 법, 복지, 보건, 영양,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그룹 30여 명이 활동하는 '오픈도어'(OPENDOOR) 포럼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1인 가구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과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열린사회,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오픈도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박 이사장은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실무자들이 1인 가구를 위해 모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게 된 것은 큰 성과"라고 표현했다. 다행히 토론회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박 이사장의 우려다.
박 이사장은 "최근 들어 정부와 지자체도 1인 가구 정책의 필요성을 인지해서 막대한 예산을 할당하며 정책들을 만들고 있지만 너무 빠른 증가세와 다양한 형태의 1인 가구에 맞는 정책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낮은 1인 가구 정책 인지도와 이용률이 지자체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숙제"라고 진단했다. 박 이사장은 "1인 가구 정책은 1인 가구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1인 가구가 가장 주된 가구 형태로 자리잡은 주요 인구집단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개선해야 할 법 용어 및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개선을 하자는 것"이라며 "1인 가구는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인 개인이기 때문에 1인이 가구가 됐다는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가족, 가구 중심의 시스템이 아닌 개인 단위의 사회구성원 기반으로 시스템이 정착이 돼야 한. 더 근본적인 가족에 대한 정의나 범위,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논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 이사장은 구체적으로 가족 관련 법을 비롯해 주택법, 보험 및 복지 케어 등의 제도적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1인 가구도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보호받고 제도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시스템의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근본적으로 제도를 검토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1인 가구의 삶의 질이 개선되기보다 지자체 중심의 우후죽순 정책이나 일회성 이벤트에서 끝날 수 있고, 참여형 정책보다 선심성, 증정성 정책에 그칠 수 있다고 박 이사장은 걱정했다.
박 이사장은 "1인 가구 관련 법을 전수조사하는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시시각각 대두되는 1인 가구 관련 필요를 채우는 지원과 함께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인구변화와 사회변화를 반영해 근본적인 제도를 개선하는 장기프로젝트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은 오픈도어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모여 1인 가구들이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을 이용하지 않는 원인과 정책인식유형을 분류하고 정책 함의를 찾아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 오픈도어가 함께 주최하는 11월말 세미나에서 본 연구 내용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 이사장이 1인 가구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1인 가구 생활을 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박 이사장은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며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논문을 완성하고자 고시촌에서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가장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관악구에서 생활한 경험을 통해서 1인 가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그 이후에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시군구별 지역의 건강수준을 측정하는 지수를 개발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때 지자체별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혼술이나 혼밥 등의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고 전했다.
박 이사장은 "혼밥은 주로 편의점이나 배달음식에 의존하고 많이들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취업준비생 기간이 길어지거나 이혼이나 사별 후 오랜 1인 가구생활에서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느끼고 사회생활이 줄어들면서 술로 밥을 때우는 혼술에 1인 가구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그 때 발견했다"며 "그러면서 1인 가구의 고립과 건강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1인 가구의 건강유형과 관련 요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꾸준히 1인 가구 연구와 인터뷰,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대형 프로젝트였던 1인 가구 연속 토론회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박 이사장의 다음 행보는 더욱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이사장은 "토론회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여러 단체와 기관으로부터 1인 가구 관련 다양한 토론회 주제를 제안 받았다. 어떤 분은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힘줘 부탁을 하기도 했다"며 "장애 1인 가구, 다문화 1인 가구 등 기존 복지시스템 안에서 지원의 경계선 상에 있거나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1인 가구가 있다. 이런 분들이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드러내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 나아가 제도적 개선을 이룰 수 있도록 2차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막 1인가구 조례를 제정하고 1인가구 정책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들을 돕는 일도 박 이사장이 집중하고 있는 일 중 하나다.
박 이사장은 이밖에도 1인 가구 관련 캠페인도 진행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1인 가구가 장기적으로 따로 또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서로를 돕고 관심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베이스의 좋은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게 박 이사장의 목표다.
박 이사장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어려운 분들의 손을 잡아드리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힘쓸 예정"이라며 "특히 우리 사회에 혼자 사는 사람들, 1인 가구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역사회 중심의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남겼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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