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코필드 판결의 함의 "무차입 공매도 사라질까"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10. 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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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매도 가파르게 증가세
파악 힘들어 사후 적발에 의존
솜방망이 처벌 세계적 문제
뉴욕남부연방법원의 의미 있는 판결
“무차입 공매도 증권사도 연대책임”

최근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늘면서 적발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 공매도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차입 공매도 거래를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근절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미국에서 무차입 공매도의 종결을 알리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21년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공매도 폐지 홍보 버스를 운행하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은) 기술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외국인 투자자가 중요한 나라에서 외국에서도 하지 않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외국인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게 과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7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를) 과거에 있었던 금액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금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겠다" "외국에 있는 사람이라도 끌어와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불법 공매도가 시장을 교란해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F4 중 2명의 의견이 갈린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론과 이상론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김주현 금융위장은 현실론자,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상론자 정도로 구분하면 될 것 같다. F4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자신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장, 이복현 금감원장을 '파이낸스(Finance) 4'라고 지칭하면서 나온 말이다.

기본적으로 공매도는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다. 자산시장에서 가격 하락을 예상해 주식이나 채권을 빌려서 매도하고,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이를 다시 사서 그 차액을 얻는 게 공매도의 원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주식을 갖고 있지 않거나 청산일까지도 주식을 확보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주가 하락을 조장하기 위해 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무차입 공매도를 포함해 "주가 하락을 목적으로 타인의 증권 구매나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서 거래에 참여하는 행위"를 2005년부터 불법으로 규정했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그런데도 무차입 공매도 여론이 어느 나라에서나 좋지 않은 건 불법이지만 밝혀내는 게 쉽지 않고, 어쩌다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서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 15일 금융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제재 건수는 2020년 4건에서 2021년 16건, 2022년 32건, 2023년 9월까지 45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과태료·과징금은 7억원, 9억원, 32억원, 107억원 정도다.

금감원이 최근 적발한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국내 주식 101개 종목에 400억원대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HSBC는 홍콩에서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주식 9개 종목에 160억원대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무차입 공매도의 벌금은 부당이득의 5배까지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많다. 미국에서 불법 공매도는 최고 20년 이하의 징역까지 가능하고, 500만 달러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차입 공매도를 실행한 증권사들의 수익이나 피해 규모에 비해서 벌금이 적다는 여론이 많다.

지난해 UBS는 지난 10년 동안 무차입 공매도 등으로 발생한 결제불이행(FTD)이 5300건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UBS가 낸 벌금은 250만 달러였다. 미국 증권사 가우드에선 지난해 무차입 공매도로 발생한 2000건의 결제불이행이 발생했지만, 이들에 매겨진 벌금은 10만 달러에 그쳤다.

SEC가 2005년 이후 여러 차례 무차입 공매도라는 주가조작 범죄 처벌을 강화했고 내년부터는 대형 거래자들의 공매도 공시를 강화할 계획이지만, 막대한 수익에 비해 벌금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주문을 대신 수행했다는 명분으로 책임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무차입 공매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9월 미국에서 불법 공매도 처벌과 관련한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이복현 금감원장(왼쪽)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공매도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뉴시스]

뉴욕남부연방법원 로나 스코필드 판사는 지난 9월 29일 헤지펀드 헤링턴이 캐나다 증권사 CIBC가 허위주문(스푸핑)으로 주가를 조작해 피해를 입었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증권사도 고객의 불법 행위에 함께 1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객의 의지로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하더라도 증권사가 게이트키퍼(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CIBC는 벌금 외에도 주가 조작으로 손해를 입은 다른 투자자들을 배상할 의무도 떠안았다.

이 증권사는 2016년 1월부터 11월까지 캐나다 제약회사 콘코디아 주식을 허위주문하는 수법으로 20.03달러였던 주가를 3.13달러로 끌어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헤링턴은 이로 인해 수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미국은 25개주에서 소비자보호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피해 금액의 3배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해외거래를 공매도 규제에서 면제하고 있어 불씨가 남아있긴 하지만, 스코필드 판결로 무차입 공매도의 종말을 기대해볼 만한 여지는 생겼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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