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스쿨 코리아] 학생도 학교도 기업도 "우린 피해자"…패배자만 만든 空교육
◆ 퓨처스쿨코리아 ◆
교권 추락, 공교육 붕괴, 사교육 카르텔, 의대 광풍, 대학 구조조정….
최근 터져 나온 교육계의 곪은 상처들이다. 교사 수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올 정도로 학교는 병들었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는 물론 대학, 학원, 기업까지 교육이란 이름으로 얽힌 모두가 불만인 것이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학교와 학원이 뒤바뀐 학생, 교권 추락의 주범이 된 학부모, 공교육 붕괴의 배경인 교사, 사교육 광풍에 편승한 학원, 규제에 묶여 경쟁력만 급락한 대학, 대학 졸업생 과잉 시대에 뽑을 사람이 없다는 기업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학교 외면하는 학생들
사실상 배움과 가르침이 사라진 일선 학교는 존재 이유를 상실해가고 있다. 특히 고등학생들의 시계는 밤늦게까지 학원에 맞춰져 있다 보니 학교 수업은 체력 보충용 시간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선행 학습이 일상화하면서 학교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 없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팽배하다. 성적이 좋은 학생은 시시한 수업을 외면하고,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려운 수업에 좌절한다. 서울의 한 공립고 2학년 학생은 "수학은 아이들끼리 수준 차가 커서 기초 개념만 가르치는데 지금은 수업 시간이 학원 문제집을 푸는 시간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공교육 못 믿는 학부모들
자녀를 '자의 반 타의 반'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학부모의 공교육 불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경기도에 사는 최 모씨는 중2, 고1 자녀의 불어나는 학원비에 울상이다. 최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챙겨 듣는 학원 과목도 늘면서 학원비 부담이 큰게 사실"이라며 "학교 수업만으로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최소한의 수준별 수업이라도 이뤄진다면 사교육비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은데 학교나 정부는 변한 게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서울 강남 일대 사교육 시장에선 입시 결과가 좋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레벨테스트를 준비하려고 별도 과외까지 할 정도다.
고등학생 학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용산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이 모씨는 갈수록 오르는 학원비에 고민이다. 지금도 월 150만원이 꼬박꼬박 아이 학원비로 들어간다. 이씨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더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벌써부터 학원비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설 자리 잃어가는 교사들
학생과 학부모의 공교육 불신 속에 교사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 학생과 학부모의 갈등으로 교사들이 잇달아 세상을 등지면서 교권 문제는 교육계 최대 현안이 됐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에서 제외한다는 법이 만들어졌고, 급기야 학교마다 변호사를 배치한다는 대책이 나왔을 정도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해 가해 학생 학부모에게 알렸는데 곧바로 학생이 '죽여버리겠다'는 폭언과 협박을 하더라"며 "교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무슨 학생지도가 필요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학교에서 나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공교육의 질 저하와 직결되는 교사들의 과도한 행정 업무도 여전하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려고 교사가 됐는데 교사가 수업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 토로했다. 체험학습, 학부모 상담, 생활기록부 작성과 같은 업무는 일상이고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나 원어민 교사 관리까지 모두 교사들이 떠안는다. 학교폭력이라도 생기면 만사 제쳐두고 매달려야 한다. 최근 서이초 교사의 자살 추모 집회에 매주 참석했다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더 이상 학교가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며 "학교는 대중이 바라보는 수준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학교가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도 부쩍 늘었다. 20대 후반인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를 지적했다가 학부모로부터 끊임없는 악성 민원을 들어야 했다. 그는 "밤낮없이 걸려오는 학부모 전화에 정신과 약까지 먹게 됐다"며 "아동학대로 걸릴까 봐 이후에는 아이를 어떻게 훈계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그는 올 초 학교를 떠났다.
서울에 소재한 한 사립대 교수는 "지금은 공교육이 무너지다 못해 교사가 아예 가치가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사교육 광풍에 할 말 많은 학원들
사교육은 최근 사교육 카르텔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면서 공교육을 붕괴시킨 주범으로 몰렸다. 하지만 현행 공교육과 입시 제도의 맹점이 사교육을 통제 불능한 '공룡'으로 키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대치동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는 한 강사는 "선행 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따라가기 힘든 입시 구조 때문인데, 이것을 전적으로 학원과 이에 의존하는 학생, 학부모들 책임으로만 볼 수 있느냐"면서 "근본 원인은 잠자는 교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정부의 방치 속에 학교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풍선 효과'처럼 사교육이 팽창한 결과라는 것이다.
의대 광풍이 사교육 현장까지 집어삼키면서 초등 의대반은 물론 유치원 때부터 고교 미적분을 배우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일상이 되고 있다.
규제에 자율성 잃은 대학들
뿌리 깊은 교육당국의 학생 선발 족쇄와 15년째 이어지는 등록금 규제로 대학은 날개가 꺾였다. 손발이 다 묶이다 보니 대학 경쟁력도 제자리걸음이라는 불만이다.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것이 등록금 규제"라며 "학생들의 실제 등록금 부담이 월 30만원 정도로 인터넷 강의 수강료와 비슷한 수준인데 어떻게 세계적 경쟁력을 키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전국의 사립대가 흔들리면 곧 국내 대학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 사립대 학생처장은 "대부분 지방 사립대들은 재정이 아주 열악한데, 법인들도 상황이 좋지 않아 법정부담금만 겨우 부담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대로선 실질 등록금은 감소하는 상황인 만큼 양질의 교수 충원은 물론 연구 여건, 행정 서비스 등 전반적인 대학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립대 교수는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연구 기자재를 구입할 수 없어 시대에 뒤떨어지고, 행정 인력을 못 뽑으니 서비스 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 교육에 불만 많은 기업들
가뜩이나 고용 시장에 구인난과 구직난이 교차하며 인력 미스매칭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인재 양성 기능을 급속히 상실해가고 있는 국내 교육 시스템에 불만을 터뜨린다. 당장 현장 중심의 실무형 인재가 필요하지만 대학 교육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인사 담당자는 "가령 학점이 높다는 것은 성실한 대학 생활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평가하는 요소가 아니다"며 "다양한 사회 경험이나 실전 프로젝트 경험 여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자는 "이런 기준으로 신입 직원을 뽑으면 대부분 중고 신입인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민서 기자/문가영 기자/한상헌 기자/박나은 기자/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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