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 칼럼] 의사들의 '황금 밥그릇'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3. 10.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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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확대는 미룰 수 없는일
충격요법보다 소통으로
필수·지방의료 붕괴 해결할
촘촘한 계획 세우는게 순서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밥그릇'이 있다. 그런데 의사들의 밥그릇은 유독 크고 견고하다. 깨지거나 뺏길 염려가 적다. 의사의 튼튼한 밥그릇은 당연시돼왔다. 남들보다 노력을 해서 얻은 자리니까, 그들을 자극하면 의료가 붕괴되니까. 밥그릇을 양보하라는 요구가 가끔 있었지만 의사들은 결코 뺏기지 않았다. 2000년 의약분업 때도 그랬다. 의사들은 핵심 권한을 빼앗기는 데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고 의대 정원 10%(351명) 감축이라는 전리품을 챙겼다. 문재인 정부도 2020년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자 굴복했다. 의대 정원이 18년째 3058명에 묶여 있게 된 배경이다.

의사 수 절대 부족은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 공백 사태를 불렀고, 의사의 몸값도 밀어 올렸다. 한국 개원의의 평균 소득은 2020년 기준 4억1000만원으로 임금근로자 평균의 무려 7배다. 소신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직업의 안정성과 고소득 등 경제적 가치에 의미를 둔다. 물질적 보상만 좇는다고 젊은 세대를 비판할 수만은 없다. 큰 임금 격차는 의대로 우수 인재가 쏠리는 '의대 블랙홀'을 초래했다. 의대 광풍은 인재 배분의 불균형을 부르고 국가 미래를 위협하는 '망국병' 수준까지 왔다. 증원으로 의사들의 기대수익을 낮추지 않고는 해결 난망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칼을 뽑은 것은 의료 공백, 의대 광풍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의사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명분이 없다. 여론도 의사의 '황금 밥그릇' 챙기기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1000여 명 확대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3000명 증원설도 나돈다. 하지만 충격 요법이 능사는 아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할 일도 아니다. 증원이 필수지만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지방 의료의 붕괴다. 정원을 확 늘리면 어쩔 수 없이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낙수 효과'가 생기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지만 지나친 낙관론일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돈이 되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으로 더 쏠리고, 필수의료는 계속 외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을 안 거친 신참 의사들이 곧장 피부과, 성형외과 등 미용 분야로 빠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수입이 적고, 삶의 질이 낮고, 의료 사고 소송 부담 큰 필수의료 기피는 더 심해지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지만 비만 치료 등 비급여 진료만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피부과에서 파트 타임으로 실손보험 가입 환자만 상대해도 월 1000만원을 버는데 누가 낮은 수가에 수술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증원을 해도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미용의료에 차단벽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가 발표를 늦추고 의료계와 소통하기로 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촘촘한 대책을 세우는 게 순서다. 필수의료에 대한 파격적인 수가 인상, 지역 의사 우대 등 보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스는 우리와 같은 이유로 증원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일본은 정원 확대 이후 보험 재정 지출 부담이 커졌다. 이들 국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의대 증원은 N수생 폭증 등 의대 쏠림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까지 겹치며 이공계 초토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만큼 처우 개선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가 버거운 난제를 어떻게 풀지 주목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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