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부터 꼬여 버린 바이든의 위험한 이스라엘행 ‘모험 외교’
아랍권 격앙에 멀어진 ‘균형 외교’·하마스 고립
애초 아슬아슬… “통제 불가 전쟁 실상 드러나”
전시 상황의 이스라엘 방문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험 외교’ 구상이 시작부터 꼬였다. 공교롭게도 바이든 대통령 출발 직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섬멸을 노리는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한창인 가자지구에서 병원 폭발로 수백 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탓이다. 이 사건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동은 이미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엄청난 도박’이라는 안팎의 우려를 무릅쓰고 이스라엘행을 강행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스라엘 지지 표명’과 ‘확전 방지’라는 이중 과제를 수행하기가 더 힘들게 됐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가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 활주로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백악관 관계자가 동행한 기자들에게 한 가지 소식을 알렸다. 이튿날 요르단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국·팔레스타인·이집트·요르단 4자 정상회담이 돌연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직전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일어난 알아흘리 아랍병원 폭발 사태의 후폭풍이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설상가상이었다. 열흘 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공습과 봉쇄로 이미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병원 폭발 소식까지 전해지자 아랍권은 격앙됐다. 하마스를 지원해 온 이란과 친(親)이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물론, 하마스와 거리를 두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도 예외 없이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와 별개인)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오발이 원인”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치솟은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대니얼 커처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는 NYT에 “팔레스타인과 아랍은 이스라엘 소행이 아니라는 걸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력’도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됐다. 이번 방문의 주된 목적이 △이스라엘에 대한 굳건한 지지 표명 △확전 억지 △가자지구 인도적 위기 해결 방안 논의 등이긴 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한 미국 관리는 NBC방송에 “이번 전쟁이 미국에 제시하는 도전의 범위를 고려할 때 대통령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 아랍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바스 수반 등 중동 정상 측이 회동 취소를 통보하면서 당초 바이든 대통령이 염두에 뒀던 ‘균형 외교’와 ‘하마스 고립’은 당분간 접점을 찾기 어려워졌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연구소의 찰스 리스터 대테러국장은 NYT에 “폭격이 누구의 소행이든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타이밍과 상황이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고 짚었다.
누구 소행인지도 모르고 “분노와 슬픔”
최악의 불확실성은 병원 폭발을 야기한 로켓을 누가 발사했는지도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 부랴부랴 낸 성명을 내고 “최악의 인명 피해에 분노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했으나, 공격 주체는 명시하지 않았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중동 전문가 조너선 패니코프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공격이 이스라엘 실수로 밝혀지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영향력이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애초부터 아슬아슬한 방문이었다. WSJ는 “병원 폭발 이전부터 성급하게 추진된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행은 경호 위험뿐 아니라 외교적·정치적 위험으로도 가득 차 있었다”고 지적했다. 비영리기구 국제위기그룹(ICG)의 분쟁 전문가 리처드 고원은 바이든 대통령 방문 직전에 터진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로이터통신에 “전쟁을 통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가 이번 비극을 통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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