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은 한 편의 서정시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3. 10. 18. 17:24
홍상수 '우리의 하루' 개봉
"있어, 그런 사람." 라면에 고추장을 넣어 먹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는 지인의 질문에 40대 여자(김민희)가 답한다. 같은 시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 앞에서 라면을 먹는 70대 남자(기주봉) 역시 국물에 고추장을 푼다.
홍상수 감독의 30번째 장편 영화 '우리의 하루'는 '하이쿠 형식에 가까운 영화'(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라는 외신의 평가처럼 두 사람의 일상을 간명하게 교차해 보여준다. 배우인 여자는 연기 공부를 하는 사촌동생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시인인 남자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찾아온 여대생(김승윤), 예술가의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한 청년(하성국)과 하루를 보낸다.
홍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처럼 영화는 불친절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을 보여준다. 해명되지 않는 사건과 대사는 인물 간의 관계를 불투명하게 하고, 그 불투명함 속에서 다양한 의미가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배태된다. 여자의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우리'인 것도 '우리의 하루'라는 영화 제목과 함께 다층적 의미를 발생시킨다. 꿈 얘기를 다루는 홍 감독의 16번째 장편 '자유의 언덕'에 등장했던 강아지 '꾸미'가 떠오르게 하는 장치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만 주인공인 여자에게는 살갑게 군다. 관객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을 보며 감초 같은 풍미가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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